■ 햄버거 매장 사라지는 日, 자동차 매장 늘어나는 印
지난해 12월 31일 '웬디즈 햄버거'는 일본에서 마지막 영업을 마쳤다. 일본 진출 29년 만에 완전 철수하게 된 것이다. 일본 햄버거 시장의 75%를 점유하고 있는 '맥도날드'도 점포 433개를 폐쇄하기로 했다.
올해 초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인도법인은 현지 수요증가에 따른 생산 증가로 올해 말까지 인도에서 1,000명을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올해 인도시장에서 작년보다 43% 증가한 12만대의 차량을 판매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구조는 경제의 기초
일본에서 햄버거가 팔리지 않는 이유와 인도에서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인구구조'에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출산율과 평균수명의 차이에 따른 인구의 연령 분포, 즉 인구구조 변화가 주요한 원인이다.
젊은층 인구가 많았던 1990년대 말 햄버거를 주로 소비하는 일본의 10~20대 연령층은 전체 인구의 30%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이 '초고령사회'로 진입중인 2010년, 일본의 10~20대는 900만명 넘게 줄어들었다. 햄버거 매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상한 일이다.
인도는 일본과 반대 상황에 있다. 인도의 인구구조는 노년층이 적고 젊은층이 많은 피라미드 형태다. 더구나 20~30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40~50대 인구가 지난 5년간 8,000만명 이상 증가했다. 아무래도 돈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사고 싶어지는 것 중 하나가 자동차일 것이다. 이렇듯 인구는 모든 경제의 기초가 된다.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일단 추세가 자리를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5년 타계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는 "인구 통계는 미래와 관련된 것 가운데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인구변화의 추세를 쉽게 바꿀 수는 없다. 일본 같은 저출산 국가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식을 2,3명씩 낳을 리는 없는 것이다.
인구변화는 경제와 사회,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올바른 자산관리를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구변화와 자산운용
"미국의 부와 인구는 지금까지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다. 아마 100년 안에 미국의 징수 세액이 영국의 징수 세액을 앞지를지도 모른다." (애덤 스미스ㆍ)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을 출간한 것은 1776년. 그로부터 4개월 후 미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국력 면에서 영국을 앞지르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인구변화에 따른 이런 예측은 지금도 적용될 수 있다.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자가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인구구조의 특성은 무엇일까? 바로 자산시장의 황금계층인 40~50대 중ㆍ장년층 인구다.
20~30대들은 빚이 많다. 아직 소득이 적은 상태에서 결혼과 내 집 마련, 자녀교육비 등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늘 자금이 부족하다. 투자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에 비해 40~50대는 30대에 진 빚을 덜고 새롭게 저축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40~50대는 소득이 많고 소득에 비해 높은 저축성향을 보이게 된다.
미국의 경우 베이비 붐 세대들이 40~50대가 되면서 금융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베이비 부머(풀어읽는 키워드 참조)가 40대에 들어선 1985년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장기 상승세를 탔으며 1990년대 내내 그들이 주식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2006년말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수가 고점을 찍으면서 시장도 같이 하락하게 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인구구조로만 봤을 때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비록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를 시작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됐던 이민자 유입 등으로 40~50대 연령층은 다시 상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그림 1 참조)
한국은 미국에 비해 베이비붐 세대가 10년 늦게 형성됐다. 한국전쟁으로 베이비붐이 지연된 탓이다. 그 결과 자산시장 발달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도 최근 금융자산의 증가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1,000조원 정도였던 개인 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2,000조원까지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한번 형성된 추세를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총인구에서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에 최고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후 완만한 속도로 하락하지만 2030년까지는 30%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구조의 고령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으나, 40~50대의 자산축적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젊은층에게 기댈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것이므로 본인의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먼저 나타나고 있는 일본의 경우 55세 이상 노년층이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선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투자전략
2007년말 기준으로 한국 가계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투자되어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980년대 말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들이 30대가 되면서 주택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그 때문에 전반적인 주택가격의 상승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노태우 정부가 '국민주택 200만호 건설' 등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베이비 부머들은 40대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주택을 교체하려는 수요가 생겼다. 소득이 많아지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주택을 원하고 또 자녀가 성장하기 때문에 큰 집을 원하게 된 것이다. 2000년 이후 중대형 고급아파트가 급격히 상승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경제도 연 3~4%대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다. 저성장 체제에서는 빈부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이 '사회의 부'를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전처럼 누구나 집만 사면 돈을 버는 시대는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가면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있던 투자자들은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부동산과는 반대로 주식의 매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 상황에서 우량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이 늘어나고 이자비용은 줄어든다. 여기에 힘을 더하는 것은 앞서 설명했던 한국 중ㆍ장년층의 금융자산 증대와 자산 축적 욕구이다. 이미 성장추세에 있는 한국 금융시장은 2010년 이후 퇴직연금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수요기반이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저금리ㆍ고령화 사회의 진행과 함께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점은 장기적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해외지역으로의 분산투자다. 특히 퇴직연금 등 노후를 대비하는 장기 투자자금은 해외 분산투자가 필수적이다.
인구구조로 봤을 때 자산시장의 성장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국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요 국가 중 40~50대 연령층의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은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가이다. 인도는 2050년까지 생산가능 인구수 및 40~50대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이고 브라질도 2045년 정도까지 지속적으로 중ㆍ장년층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인구구조를 가진 국가들에서 장기적으로 자산시장이 성장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인구구조 하나만을 가지고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인구구조는 장기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주식시장 시황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인구통계학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나마 인구 통계는 장기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지표 중 하나였다.
■ 풀어읽는 키워드
● 베이비 부머
원래 2차대전 후 1946~65년 사이 출생한 미국인들을 부르는 용어였다. 이들은 미국 인구 중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전 세대와는 달리 성(性) 해방과 반전(反戰) 운동, 히피 문화, 록음악 등 다양한 사회ㆍ문화운동을 주도해 왔다. 이들이 인생의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미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이들의 은퇴와 맞물려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주로 1947~49년에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를 가리킨다. 총 인구의 5.5%를 차지하며 2007년부터 은퇴를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1955~63년에 태어난 728만명을 베이비 부머라 한다. 전체 인구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 韓·美·日 같은 점 다른 점
'서기 32XX년, 일본인 한 사람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는 일본 국립사회보장ㆍ인구문제연구소가 2004년 통계를 토대로 출산율ㆍ성비ㆍ평균 수명 등이 일정하다고 가정해 계산한 시나리오다.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으로 일본 인구가 점차 줄어들어 1,000년 후인 3200년에는 드디어 일본인이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얘기다.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아진 한국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들어야 할 내용인데 최근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재의 인구구조가 고착화되면 2500년경에는 인구가 줄어서 한민족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사회변화를 보면 일본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일본과 비슷하지만 투자문화는 미국과 비슷해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중ㆍ장년층 증가에 따른 자산축적이 대부분 부동산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든 금융자산이든 버블이 생기고 또 수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폐해는 부동산 쪽이 훨씬 심각하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비를 증가시킬 수는 있지만 주식처럼 산업계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동산은 대부분 대출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해치게 된다.
최근 한국 자산시장은 금융자산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2004년 이후 적립식 펀드의 등장으로 장기투자 문화도 성숙돼 가고 있으며, 퇴직연금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 이미 큰 규모로 성장한 국민연금과 함께 국내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미국도 1970년대 말까지는 가계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1980년 이후 저금리시대가 도래하고 퇴직연금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금융자산, 특히 주식으로 자산이 이동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 중 어느 방향으로 변화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한 시기다.
윤치선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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