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화강암 같은 질감의 독특한 마티에르 위에 소박한 서민의 삶을 그려낸 화가 박수근(1914~1965ㆍ사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국민화가'라 부르지만 끊임없이 치솟는 작품 가격, 혹은 위작 시비 등에 가려 정작 그의 작품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박수근 45주기를 맞아 7일부터 여는 '국민화가 박수근'전은 오랜만에 만나는 대규모 박수근 작품전이다. 대부분 개인 소장인 박수근의 대표작 4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다.
특히 박수근의 절정기로 꼽히는 1950~60년대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에 나온다. 1953년 제2회 국전 특선작인 '우물가', 1954년 제3회 국전 입선작인 '절구질하는 여인'을 비롯해 골목길에서 공기놀이하는 소녀들을 그린 '유동'(1963) 등이 대표적이다. 1960년 작인 '목련'과 1964년 작 '아기 업은 소녀' 등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그림 외에도 박수근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후원자였던 마거릿 밀러 부인과 주고받았던 편지 사본 등도 전시된다.
박수근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영문 도록(마로니에북스 발행)도 최초로 발간됐다. 이번 전시 출품작을 포함한 박수근의 작품 도판 99점이 실렸고,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유홍준 명지대 교수, 김영나 서울대 교수, 김복영 숙명여대 교수의 글과 박수근의 연보, 사진 등이 수록됐다.
국내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 근무할 당시인 1961년부터 박수근과 인연을 맺었던 박명자 갤러리현대 사장은 "박수근 선생을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변변한 영문 자료가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며 "높은 작품값 때문에 박수근 선생에 대한 오해의 시선들이 많은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박수근 선생 부인 김복순 여사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그림 '굴비'를 1970년께 2만5,000원에 판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30년 후 수소문 끝에 찾아내 2억5,000만원에 다시 구입,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인 화가 박성남씨는 "아버지가 작고할 당시 밀러 부인이 주선하던 해외 전시가 무산됐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영문 도록을 통해 늦게나마 아버지의 소원이 풀린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버지는 매일 아침 걸레질을 하고 마당을 쓴 뒤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저녁이면 막걸리 한 잔 드시고 돌아오시는, 스스로의 예술세계와 일치하는 소박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전시는 30일까지, 입장료 3,000~5,000원.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도슨트의 작품 설명이 있다. (02)2287-350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