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이삭이 맺히는 것을 '보리가 팬다'고 말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패다'는 '곡식의 이삭 따위가 나오다'고 소개하고 있다. 바야흐로 보리밭에서 보리가 패고 있다. 줄기 끝에 달리는 보리 이삭마다 보리가 패고 있다. 봄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에서 머리를 들고 있는 청보리의 자존심을 보고 있으면 불끈 힘이 솟는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나는 그 꼿꼿한 자존심이 좋다. 보리는 인간이 제일 먼저 재배한 작물 중의 하나다. 벼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보리다. '보리 문디'(보리 문둥이)라는 말이 있다. 경상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면서, 친한 친구 사이에 스스럼없이 부르는 호칭이다.
그건 어쩌면 경상도 사람들이 보리와 친근하다는 뜻일 게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쌀밥을 먹는 철인 겨울과 봄에도 경상도 사람들은 보리밥을 먹었다고 한다. 보리밥을 먹으면 '보리방구'(보리방귀)를 뀐다. 보리에는 쌀보다 몇 배나 많은 식이섬유가 들어있다.
식이섬유 대문에 장운동이 좋아져서 방귀가 나온다. '보리방구'는 건강의 청신호다. 보리밥 해서 한 대접 퍼서 '빡빡된장' 넣고 비벼먹고 싶다. 시원하게 '보리방구' 붕붕 뀌고 싶다. 보리가 패는 계절이다. 쓴입에 고향의 맛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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