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비평은 첨예한 위기의식에 기반한 작업입니다. 당대를 혼돈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전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 비평가들의 공통된 욕망일 겁니다."
제21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우찬제(48ㆍ서강대 국문학과 교수)씨가 문학평론가로서 돋보이는 면은 문학의 외부에서 문학과 상호작용하는 사회 환경의 특질을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달리 말해 문학사회학적 비평에 능하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적 통찰로 수다한 문학작품들을 일거에 꿰뚫어 분석하는 우씨의 비평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 후련해질 만큼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작품의 내재적 의미를 파고드는 방식이 주종을 이루는 비평 풍토에 비춰볼 때 매우 개성적이고도 소중한 작업이다.
수상작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우씨의 이같은 비평적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이 '접속의 시대'(원제 'The Age of Access'ㆍ국내에서 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에서 지적한 현대 문명의 특징을 분석틀로 삼아 한국문학의 새로운 양상을 추적한다.
우씨는 인터넷을 통해 전 지구적 정보화가 진행되는 '접속의 시대'엔 문학의 소재가 몸의 직접 체험보다는 접속을 통한 간접 체험에서 비롯되고, 시간적 선후 관계나 인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비전통적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되면서 낯선 문학적 의미가 생성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2000년대에 발표된 김영하, 박민규, 윤이형, 김미월, 김애란, 정한아, 한유주씨 등 이른바 '접속세대' 작가들의 소설을 분석, 한국문학이 바야흐로 접속의 시대의 영향권에 들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비평계의 여건과 관행상 작가나 출판사의 청탁을 받고 쓰는 단발성 작품 해설이 비평 활동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런 글이 주제와 내용이 들쭉날쭉한 채로 짜깁기돼 비평집이란 이름을 달고 버젓이 출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씨는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수년 동안 일관된 주제를 정해놓고 비평 작업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양질의 비평집을 출간해왔다.
이번 수상작까지 우씨가 펴낸 6권의 평론집에 담긴 사유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는 "비평집을 내면서 마지막으로 도달한 사유가 바로 다음 비평집의 주제가 된다"는 그의 말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처음 두 평론집 (1993)과 (1994)에서 1990년대 한국문학에 드러난 '욕망'과 '상처'를 각각 다루며 개인의 문제를 천착했다. 세 번째 평론집 (1996)에선 '나' 아닌 '타자'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네 번째 평론집 (2003)에선 그간의 작업을 종합해 개인과 타자의 상호 존중과 '공생'의 가능성을 세기 전환기의 문학을 통해 탐색하며 사유를 진전시켜왔다.
우씨의 향후 비평 주제는 '접속세대 소설의 리듬'이 될 모양이다. 그 시론으로 김도언, 김중혁의 소설을 리듬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 이번 비평집에 실려있다. "내용과 주제에만 치중했던 기존 소설비평의 한계에서 벗어나 서사의 긴장과 이완, 어조 등 스타일의 측면에서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씨는 "'비평가는 고작해야 백밀러를 보며 차를 모는 운전수'라는 어느 미국 작가의 비아냥은 평론가로서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라며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비평하는 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삶을 고민하고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줄 아는 비평가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약력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건양대 국문학과 교수, 미국 아이오와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계간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등 역임 ▦평론집 등 ▦소천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수상
■ 심사평/ 치열한 균형감각… 시대 통찰 압도적
심사 대상 평론집들을 검토하면서 심사위원들은 기대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의 문학비평을 한동안 질식시켜온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들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평을 대신하려 하는 문학연구나 거시담론 같은 것들이 줄어들고 현장비평이 그 줄어든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비평 중 어느 한 종류가 더 성행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비평'에 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심부'(적절성이 부족한 표현이겠으나 편의상 사용하기로 하자면)가 아닌 '주변부' 작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진 점도 눈에 띈다. 이것이 문학의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맥락과 관련되는 현상인지, 아니면 이른바 해설비평의 폐단이 커진 데서 비롯된 현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쩌면 두 가지 맥락이 얽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대상의 선택부터가 이미 중요한 비평 행위라는 말에는 그 선택의 무게에 값하는 비평적 내용의 동반이 전제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두 권의 평론집을 앞에 놓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이 논의는 고민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논의였다. 왜냐하면 두 권 중 어느 것이 수상해도 좋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권인 구모룡의 는 '지역문학' 속에서 '지역비평'을 생성하고 정립해온 중견 비평가의 최근의 왕성한 활동 성과를 담고 있는데 그 작업의 긍정적 의미가 주목되었다. 더구나 그 작업의 밑바탕에는 의욕과 열정뿐만 아니라 든든한 안정성과 신뢰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작업에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우리가 우찬제의 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이 평론집이 오늘의 한국문학의 전위 혹은 선봉이라는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인 지평과 대결하면서 보여주는 비평적 치열성에 더욱 주목했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중요 작가들에 폭넓게 접근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뚜렷이 세우고 있는 이 평론집은 작품 속으로 깊이 침잠하여 작품에 스며들고 작품에서 스며나오는 시대에 대한 통찰을 민감하게 포착해낸다. 바로 이 비평적 능력이 비평가의 의도를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부제로 붙인 '접속 시대의 상상력'이 오히려 더 좋은 제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의 제기와 함께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김병익, 오생근, 김인환, 성민엽
■ 심사경위/ 최종 2명 두고 고심… 구모룡 진실성에도 박수
팔봉비평문학상의 나이가 20살을 넘어 21살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20살의 성인으로 변신하는 시점에서 유족 측과 한국일보사의 노력으로 기금을 확충하고 상금을 증액할 수 있었다. 증액에도 불구하고 1억원이 넘는 문학상 상금이 속출하는 시대에 1,000만원이란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뛰어난 비평가를 찾아서 격려하는 작업을 팔봉비평문학상은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다.
팔봉비평문학상은 팔봉 김기진 선생의 유지를 기려 제정된 상이다. 그런 만큼 현실과 문학에 대해 진지한 고뇌와 깊이 있는 성찰과 발랄한 표현을 보여주는 평론집에 이 상을 수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팔봉 김기진 선생은 비평의 이념화를 선도한 분이지만 그 이념화는 어디까지나 문학의 문학다움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래서 팔봉 선생은 지나치게 이념화를 추구하는 회월 박영희와 싸웠다. 또 팔봉 선생은 문학이 지나치게 이념화함으로써 독자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여 대중화를 주장했지만 그 대중화가 돈벌이를 위한 통속화로 전락하는 것은 반대했다. 그래서 이념적 투쟁의 예봉을 고집하던 임화와 싸웠다. 이런 점에서 비평이 해석과 분석에서 긴장과 탄력을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
제21회 팔봉비평문학상의 최종 심사는 순탄했다. 김병익 위원장을 비롯해서, 김인환, 오생근, 성민엽 네 사람의 심사위원이 최종 심사에서 거론한 평론집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종심에 오른 6권의 평론집 중 4권은 쉽게 제외되었고 마지막 문제는 구모룡의 와 우찬제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종심은 두 권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종했다.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주변부의 작가들을 다루는 구모룡과, 주요 작가를 균형감각을 갖춘 자기 시각으로 읽고 있는 우찬제에 대해 네 사람의 심사위원은 즐거운 고민과 논란을 한참 동안 지속해야 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마침내 심사위원장은 구모룡의 진실성에 대한 호의적 지지를 이 정도에서 끝내자고 함으로써 수상자를 우찬제로 결정했다.
홍정선 문학평론가ㆍ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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