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방안에 피의자와 피해자가 함께 있지 않았고 직접적 성폭행 위협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성폭행의 위험을 느끼고 탈출하다 상해를 입었다면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강간과 치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적용범위를 기존 대법원 판례보다 더 확장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모(37)씨는 지난해 8월 새벽 함께 술을 마시던 A(27)씨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며 차에 태워 전남 화순군의 한 '무인텔'(종업원 등이 없는 모텔)로 강제로 끌고갔다. 성폭행의 위협을 느낀 A씨는 김씨가 1층 주차장에 가 있는 사이 2층 객실에서 뛰어내려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강간치상 등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2부(부장 조의연)는 김씨의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4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고 객실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막기도 해 성폭행의 위협을 느끼게 했다"며 "이 모텔이 종업원 등에게 구조 요청이 어려운 속칭 무인텔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다친 것은 김씨의 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1995년 대법원은 피고인이 객실 이용시간을 연장하려고 전화를 하는 순간 성폭행을 피하려고 객실에서 뛰어내린 여성이 사망한 사건에서 직접적인 성폭행 위협이 없는 순간이었더라도 여성의 사망이 성폭행 시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피고인에게 강간치사죄를 인정했다.
광주지법 양영희 공보판사는 "이번 사건은 피고인이 방 안에 없었는데도 강간치상죄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강간치상죄 적용범위를 더 넓힌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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