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희 지음/인문산책 발행ㆍ384쪽ㆍ1만8,000원
인도는 신들의 나라다. 11억 인구보다 신이 더 많다. 자연히 신화도 풍부하다. 하지만 인도 신화는 한국인에게 낯설다. 그리스 신화만 잘 안다. 인도뿐 아니라 북유럽과 아프리카 신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신화도 잘 모른다. 지독한 문화적 편식의 결과다. 둥근 지구에서 몇 안 되는 강대국만 도드라지는 힘의 판세 탓이기도 하다.
은 그림으로 보는 인도 신화 이야기다. 책에 실린 150점의 민화는 인도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지은이가 20년 넘게 모은 인도 미술작품 1,500점 중에서 고른 것이다.
그림책으로 봐도 좋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창조의 신 브라마, 보호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 등 힌두교의 가장 잘 알려진 세 신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는 탄생과 죽음, 진실과 거짓, 평화와 전쟁, 선과 악 등 인간이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인도 신화에는 이들 인격신 외에 태양, 나무, 불, 비 등 자연신도 수두룩하다. 신들의 천지창조, 사랑과 모험, 인간과 신이 함께 어울린 이야기 등 보물창고를 열듯 풍성한 신화를 좌르르 풀어놓았다.
인도 대륙이 워낙 넓다 보니 민화도 지역에 따라 재료와 표현기법에 차이가 많다. 비하르 주의 마두바니 민화는 화려한 색채로 화면이 꽉 차게 그린다. 반면 마하라슈트라 주 왈리 부족의 민화는 호주 원주민 그림을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형태와 단순함이 특징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또다른 갈래는 인도 토착민인 드라비다 족이 살고 있는 남부지역의 민화다. 그들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인도 북부를 차지한 아리안 족은 중앙아시아와 이어지는 지정학적 조건 탓에 이슬람 등의 외침을 자주 받다 보니 문화도 섞이고 바뀐 것이 많다. 반면 남부 지역은 그런 광풍에서 벗어난 덕분에 힌두교 신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인도에서 신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인도인은 지금도 신들과 더불어 산다.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기쁠 때 등 삶의 모든 순간에 신화를 떠올리며, 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신화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마두바니 민화는 그 지역 여인들에게 집안일만큼이나 익숙한 것이다. 왈리 부족은 집안 흙벽에 흰 쌀가루로 벽화를 그리고,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결혼의 여신 파라가타를 신랑 신부와 함께 그려 넣은 민화를 제작해 축복을 구한다.
신화는 문화의 원형질이다. 사람 사는 곳엔 어디나 신화가 있다. 신화는 비슷한 모티프를 지역에 따라 변주하곤 한다. 비슈누의 화신 마트스야가 최초의 인간 마누를 구한 이야기는 구약성서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와 닮았다. 원숭이 신 하누만은 중국 서유기의 손오공과 통한다. 하늘의 무희 우르바시와 인간 세계 푸루라바스 왕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설 선녀와 나무꾼을 연상케 한다. 여러 문화권을 관통하는 이러한 유사성을 이 책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도는 먼 나라가 아니다.
한국도 신화가 있다. 천지창조, 세상 만물이 생겨난 내력, 삶과 죽음의 비밀 등을 일러주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바리데기 신화 등 알려진 건 몇 안 된다. 이 책처럼 그림으로 보는 한국 신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 신화와 사귀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이니.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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