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ㆍ남경태 옮김/ 마젤란 발행ㆍ244쪽ㆍ1만4,000원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짜증스런 벌레'라고 했다. 골치아픈 것을 싫어하는 보통사람들을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늘 괴롭혔기 때문이다. '알고 싶다'는 욕구의 뿌리는 호기심이다. 소크라테스는 궁금한 게 많았다. 왜 그런지, 정말 맞는지 줄창 의문을 던지니 자연히 피곤한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아침 식탁에 초대하면 밥맛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헤겔이나 베이컨 등 다른 손님을 초대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은 굳이 철학자를 사귀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런 친구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통념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일상의 그저그런, 혹은 더러 결정적인 순간들에 철학자를 불러내 충고를 듣는다. 지은이는 철학이 삶에 꽤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필수적임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
일상 속의 철학이 이 책의 주제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밥을 먹고, 옷 차려 입고, 출근해서 일하고, 마트에 들러 쇼핑하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가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의 구석구석에 철학을 끌어들여 삶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수많은 철학자가 등장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과 맞물린다. 러닝머신에서 한참 땀을 흘릴 때 미셸 푸코가 나타나 딴지를 건다. 사람 몸은 저마다 다른 게 자연스러운데, 왜 다들 군살을 빼라는 압력에 순응하느냐, 그건 신체 파시즘 아니냐고.
옷을 사려고 들른 상점에 쇼핑 도우미로 나타난 라캉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반하는 나르시시즘의 위험을 경고한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마르크스는 임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심리학, 문학, 예술, 최신 영화와 드라마, 책도 수시로 출몰해 철학자들을 거든다.
매사 이런 식으로 일상 속에서 철학을 재발견하는 책이다. 짜증스런 잔소리 보따리일 것같다고? 걱정 마시라. 다행히 이 책은 재미있다. 지은이의 유머 감각은 철학자와 마주치자마자 뻣뻣해지려는 독자의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심각하고 진지해 보이는 철학을 일상 소품 또는 생필품처럼 다룬다. 그렇게 어깨에 힘을 빼고 썼지만, 가볍지는 않다. 철학을 "뭐에 쓰는 물건인고?"라며 시큰둥해하거나, 반대로 참선 수행자의 화두 '이 뭣고'로 여겨 무겁게만 받아들이는 이들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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