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크럼프 지음ㆍ앨런 크럼프 그림ㆍ유자화 옮김/타임북스 발행ㆍ364쪽ㆍ1만4,800원
진분홍색 표지의 책에 '치명적 사생활'을 담았다니, 감각적 호기심이 먼저 발동한다. 목차를살펴보면 '자기야, 오늘 밤은 참아줘'라는 제목이 동공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사생활을 폭로하는 X파일로 이 책을 읽으려 하면 오산이다.
미국 노던애리조나대 교수인 행동생태학자 마티 크럼프가 생물의 사랑과 우정, 배신과 복수 등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호작용 사례들을 한 데 모았다. 같은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동물과 식물 간의 상호작용, 곰팡이ㆍ세균과의 상호작용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소개한다. 곤충과 파충류, 양서류와 어류, 조류, 설치류와 포유류를 통틀어 241종의 동물이 등장한다. 곰팡이와 세균을 빼고도 그렇다.
첫 번째 장의 초반에서 동물들의 짝짓기 이야기가 소개된다. 코스타리카할리퀸개구리와 소금쟁이가 짝짓기를 둘러싸고 벌이는 암수 대결, 다른 수컷과의 교미를 막기 위한 여우다람쥐와 꿀벌의 '교미 마개' 이야기가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는 이내 "성 대결에서는 수컷도 암컷도 승자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 책은 생물의 관계를 인간 중심의 사고체계로 해석하지 않는다. 동물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사회적 의미를 찾으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우리 체중의 10%를 차지하는 세균과의 상호작용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서 거대한 미루나무 한 그루를 상상하라고 권한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생물의 상호작용이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불도저가 나무를 쓰러뜨린다. 수많은 상호작용들이 스러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경이로운 상호작용들을 생각해보라"며 종뿐만 아니라 상호작용도 보존해야 한다는 저자의 전언에 고개를 주억거릴 법하다.
마치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는 초근접 촬영을 한 듯한 묘사로 생물의 은밀한 활동을 이야기하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처럼 유쾌하고 재치있는 서술을 이어간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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