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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집' 아버지의 부재…어머니의 학대…가족, 사랑이란 이름의 비극적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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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집' 아버지의 부재…어머니의 학대…가족, 사랑이란 이름의 비극적 울타리

입력
2010.04.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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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발행ㆍ336쪽ㆍ1만1,000원

소설가 김주영(71)씨가 장편 (2002) 이후 8년 만에 펴낸 작품이다. (1998)에선 아버지, 에선 어머니가 집을 나간 채로 성장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던 김씨는 새 장편에서는 부부가 어린 딸을 방치한 채 번갈아가며 부재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모의 부재라는, 어릴 적의 결핍에 기반한 성장소설이란 점에서 은 이전 두 작품과 궤를 같이 하지만 작품에 서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씨는 두 전작에서 주인공 소년이 내면의 상실감을 대자연과의 교감으로 달래는 모습을 따뜻한 서정의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주인공 가족의 신산하고도 비극적인 삶의 여로를 냉정한 시선으로 묘사할 뿐이다.

주인공 소녀 어진의 성장기는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학대로 점철돼 있다. 상습 도박꾼으로 사기도박 혐의로 수배까지 받고 있는 아비는 이따금 가족을 찾아오지만, 며칠씩 두문불출하고 하는 일이라곤 화투장을 다루기 좋도록 길게 기른 손톱을 다듬거나 손바닥 감각을 기르는 데 좋다며 서먹해하는 딸의 오줌을 대야에 억지로 받아내 손을 씻는 짓이다.

손에 흙을 묻힌 적 없는 양반 가문의 후예를 자처하며, 당장 떠돌이 생활을 관두라는 아내의 앙칼진 요구엔 느물스러운 대꾸를 할 뿐이다. 시름에 겨운 어미가 행사하는 폭언과 폭력은 고스란히 어진의 몫이다.

하지만 허랑한 남편에 대한 어미의 감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사기범을 잡겠다며 집에 들이닥친 형사를 의뭉스레 따돌린 사람도 그녀이고, 때가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태우며 기다리다가 결국 직접 찾아가 솜누비옷을 건넨 사람도 그녀다. 딸이 보기에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앙숙이었다."(90쪽)

그러던 어미가 점차 집을 비우는 시간과 빈도가 늘고, 이젠 거꾸로 아비가 딸의 손을 붙잡고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상황에 이른다. 평생 자신을 저버리고 살았던 남편에 대한 처절한 복수였을까. 어진은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을 홀로 임종할 즈음에야 어머니가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짐작과는 다른 이유를 알게 된다.

평생 서로 애증했던 부모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열아홉 살 어진의 인생은 이후에도 순탄치 않다. 어머니의 빚 때문에 집이 처분되면서 떠밀리듯 선택한 결혼, 아버지가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 언니와의 만남, 어느 쪽도 어진에게 무참히 깨져버린 가족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또다시 홀로 남은 그녀에게 가족은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를 내치고야 마는 '빈집'이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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