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기 전, 약장수들 틈에 끼어 웃음을 선사했던 유랑광대는 당시 서민들에게 삶의 활력소와도 같았다.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이들은 '홍도야 우지마라' '며느리 설움' 등 유행가를 활용한 신파극과 해학미가 넘치는 이조극(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장화홍련전ㆍ조선시대 옷을 입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등으로 관객의 눈물 콧물을 뺐다. 그러나 그들 중 지금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그마저도 소리 없이 스러져가고 있다.
"어마이, 나 장개 보내줘잉. 응?" 여든을 앞둔 광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영락없는 아이 목소리를 냈다. '장화홍련전'에 등장하는 장쇠 연기였다. 한국문화의 집에서 만난 손해천(79ㆍ본명 손태열)씨는 40년 넘게 해온 '쌈마이' 연기를 하나씩 보여줬다.
보여달라고 주문한 건 아니었다. 극이 몸에 배어서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각설이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던 시절을 회상하면서는 "얻어먹는 놈한티 빌어먹었제~"라고 구성진 가락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손씨의 장기는 '흥보전'의 마당쇠, '심청전'의 황봉사 역. 전통 창극에서는 비중이 적지만 유랑극에서는 최고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감초 같은 역할의 조연이다. 일본 가부키에서 희극 조연을 '삼마이메(三枚目)'라고 부른 데서 온 '쌈마이'라는 말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밑에서 잘 받쳐줘야 극이 재미있는 것이제. (내 연기를 보고) 힘 없는 놈은 오줌을 발발 쌌다니께."
이렇게 돗자리 한 장만 깔면 원 없이 놀던 그가 12~16일 한국문화의 집에서 열리는 '유랑광대뎐'을 끝으로 무대를 떠난다. 시신경 장애로 시야가 좁아지면서 관객과 상대 배우를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 때, 토란 잎에 소나기 쏟아지는 듯한 장구 소리에 빠져" 남원농악단을 따라나선 지 꼭 60년 만이다.
"반응을 알아야 요다(애드립)를 하든지 할텐디 객석을 밝게 해도 이제는 잘 안 봬. 소리 나는 쪽을 향해서 연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제." 그는 지금도 100가지가 넘는 작품을 외우고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일 수 있지만, 행여나 관객을 실망시키거나 상대 배우에게 누가 될까 하는 걱정에 은퇴를 결심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진옥섭 예술감독은 "손 선생은 쌈마이 연기뿐 아니라 좌도(전라도)와 우도(경상도) 농악에 두루 능한 분"이라며 "최고의 토종 광대라는 강준섭(진도다시래기 예능보유자) 선생도 손 선생이 대거리하지 않으면 제 맛을 못 낼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손씨는 30만원이 좀 넘는 기초생활수급자 급여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두번째 부인과 사별했고, 두 딸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다. 한때 남원여성농악단에서는 명창 안숙선이 그의 후배로 있기도 하는 등 화려한 이력의 손씨지만, 지금 상황은 막막하기만 하다. "(시립단체에) 가만히 있었으면 인간문화재라도 됐을 거인디. 먹고 살라믄 떠돌아야 했어. 남은 건 병밖에 없제."
그는 그래도 광대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 웃고 살아야제. 고놈의 돈이 문제여. 요새는 웃으라고도 못하겠고, 울라고도 못하겠당게"라며 요즘 세태를 두고 씁쓸한 말을 남겼다.
진옥섭 감독에 따르면 강준섭씨와 그의 부인 김애선씨, 투병 중인 공옥진씨 등 현존하는 유랑광대는 10명도 채 안 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승자가 없어 이 세대가 지나면 유랑극은 역사에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 감독은 "맥이 끊기기 전에 생존자의 음원을 녹음하고, 발림(몸짓)을 빼놓지 않고 채록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손씨의 마지막 공연에는 강준섭, 김애선씨와 채상소고춤 명인 김운태씨가 함께한다. 흥보전의 '놀보막', 채상소고춤, 경문유희, 심청전의 '뺑파막'이 무대에 오른다. 관람료 5,000원. (02)567-8026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