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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토이&북 뱅크' 어떻습니까?

입력
2010.04.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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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밉고 잔인했던 4월이 지나갔다. 그 마지막 날, 역시 가슴 아픈 뉴스가 조그맣게 발표됐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저소득(차상위계층 이하) 아동가구 생활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 집이 55.8%, 아동용 책이 한 권도 없는 집이 29.3%라고 했다.

다른 중요한 '생활실태' 항목 속에 묻혀 있었지만 장난감과 동화책 실상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태어나 10년 가까이 외딴 섬에서 자랐는데, 그 때 우연히 갖게 되었던 플라스틱 장난감 자동차의 촉감과 라는 동화책의 내용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지금도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하고 집에 있는 강아지를 동료(?)로 여기는 인식이 그 때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집 베란다와 방 구석구석에 낡은 박스가 많다. 장난감과 동화책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아이들의 손때와 정이 묻었고 그들의 마음을 키워준 것들이기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미 추억의 물품이 된 '박스 용품'만이 아니다.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린 노트북이나 PC, 중학생이 되어 이제는 사용하지 못하는 과학기자재와 각종 전집 등이 웬만한 집이라면 적잖이 쌓여 있을 터이다.

장난감ㆍ동화책이 없는 아이들

이것들을 처분하려면 폐품으로 분리 수거토록 하거나 폐지로 취급해 버릴 수밖에 없다. 종교기관에 갖다 주거나 필요한 단체를 찾아내 소포로 보내면 되지만 그게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또 동사무소에서 작은 스티커를 구입해 폐기물로 가져가면 재활용하는 방안도 있다지만 '소중한 보물'을 버린다는 마음도 쉽지 않고 그러한 절차를 밟는 일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취약계층 아동을 위해 드림스타트 사업을 개발해 보건ㆍ복지ㆍ보육ㆍ교육ㆍ문화 등의 종합적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대상지역을 2009년 38개 시ㆍ군ㆍ구에서 올해엔 100곳으로 확대하고, 예산도 확충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사회성이 높아졌으며 문제행동 발생률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드림스타트 사업에 아쉬운 대목이 있다. 정부 서비스 대부분이 가족이나 보호자, 취약계층 가구를 향해 있어 아동 개개인에게는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이번에 드러난 '장난감과 동화책' 실태가 아닐까. 요즘 널리 퍼진 '푸드 뱅크'에서 착안해 '토이(toy)&북(book) 뱅크'를 궁리해 보았다. 민간 차원의 봉사활동 개념을 넘어 정부가 조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도시 집안에서 잠자고 있는 '토이&북'은 지방의 벽지ㆍ도서에서 많이 필요할 터이고, 세칭 강남권 일부에서 불필요한 '토이&북'은 강북권 곳곳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지자체나 동네에 맡겨둘 경우 정작 필요한 것은 내놓는 집이 적을 터이며, 내놓을 것들이 많은 지역에선 가져갈 사람이 별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처럼 행정전산망이 활발히 이용되는 상황에서 A지자체가 수집한 장난감과 동화책을 어느 지자체에서 필요로 하는가 등을 연결하는 작업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닐 듯하다.

작은 노력으로 행복 심어 주기

자신들의 '보물'이 남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인식을 주고, 무엇보다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장만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예로 인근 동사무소 등에 24시간 갖다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 '토이&북'을 해당 전산망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일손이나 별도의 근무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드림스타트 사업의 일부로 여기면 지자체 간 물품 이동 등의 부수비용은 장만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장난감과 동화책이 어린이들의 생활과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정의 달, 어린이 날을 맞아 정부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어른들이 조금만 더 희생을 하자.

정병진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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