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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춘, 병역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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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춘, 병역을 지다

입력
2010.04.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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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흐드러진 봄날, 조카애가 군에 입대했다. 입대하는 날 아침, 몸이 아픈 아이 아버지를 대신해 언니와 함께 조카를 배웅하러 진주로 향했다. 3시간 30분, 아득한 심정과는 달리 그리 먼 길은 아니었다. 입대하는 사내애들과 그 친지들이 대부분인 버스 안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서해 앞 바다에서 또래 청년들의 비극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조카는 짧게 자른 머리도, 흔들리는 눈빛도 모자 속에 감춘 채 내내 창 밖만 바라봤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 한낮인데도 날이 어두웠다.

스물두 해 전 그 애가 태어났을 때, 나는 그 애가 자라서 군대에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군사독재의 그늘도, 냉전의 앙금도 조금씩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젊은 나는 그 아이가 자라서 번듯한 사내가 되었을 쯤에는 세상이 많이 변해 있을 거라고, 더는 병역을 의무로 지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애와 그 애의 사촌형들이 군대에 갈 때서야 깨달았다.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결국 아이들은 자라서 군대에 갔고, 그 애들이 청춘의 한 시절을 '받들어 총' 하는 동안 나는 편안하게 잘살았다. 이제 내 편한 잠을 위해 하나 남은 녀석이 입대할 차례였다.

진주에 내리자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뭐든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하자 조카는 "이상하게 먹고 싶지가 않아요."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군대를 해결해야 속이 편하겠다며 작년부터 입대를 서둘렀지만, 막상 입대할 시간이 다가오자 싱숭생숭한 것이 저 스스로도 이상한 듯했다.

공군교육사령부 앞에는 벚나무가 무성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속절없이 꽃잎이 졌다. 사람들은 묵묵히 꽃길을 걸었다. 수천의 인파가 모였건만 소란스러움은 느낄 수 없었다. 운동장 가득 신병들이 모이고 간단한 입대 의식이 행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 엄마를 품에 안은 아이가 눈시울을 붉혔다. "괜찮아, 걱정 마." 담대한 제 엄마가 웃으면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가 행렬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행렬이 움직였다. 주위에서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애인과 엄마들이 흐느끼는 옆에서 아버지들이 눈물을 훔쳤다. 한 번이라도 더 아들을 보려는 가족들이 행렬을 따라 뛰었지만, 언니는 등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군대에 믿고 맡겨야지." 맺고 끊음이 분명한 어머니였다.

돌아오는 길, 베트남전 참전용사라는 택시기사가 말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가 돼요."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국정원장까지 군 미필인 시대에 아직도 그런 믿음을 고수한다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와야 비로소 남자라는 말에서 나는 병역을 의무로 받아들인 이들의 쓸쓸한 자부심을 읽었다. 빽이 없어서 마지못해 간 게 아니라 남자니까 당당히 갔다 왔다고 믿고픈 마음들이 그런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열흘 뒤 조카애의 옷 보따리가 도착했다. "식구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아들의 메모 앞에서 담대한 어머니는 울고 말았다. 원정출산도 병역기피도 고려해본 적 없는 정직한 부모는 아들을 담담히 군대에 보냈다. 그 부모를 보고 자란 아들은 제가 싸울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군인이 되었다. 다만, 그것이 이 땅에 사는 의무라 배웠기에, 그 의무를 피하는 비겁함은 아직 배우지 않았기에, 아이는 병역을 지고 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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