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신설될 약학대학 유치에 성공한 수도권 A대 B 총장은 요즘 또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약대에 들어갈 재정 부담 때문이다. 40명 배정을 목표로 약대 유치에 나서 '복덩어리'를 끌어오는데는 일단 성공했지만, 실제 배정된 인원은 신청 인원의 절반인 20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약대 신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등록금 수입이 반토막나게 된 반면, 교수 충원과 시설 투자 등 약대 인프라 구축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B총장은 "어디서 약대 신설 재정을 마련해야 할 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약대 신설 대학의 사정도 대부분 비슷하다. 50명을 신청했지만 20명을 배정받은 C대학 관계자는 "배정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교수 채용 등 시설 투자는 예정대로 해야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게 문제"라며 "특히 약대 간 스카우트 경쟁으로 교수들의 몸값이 뛰어 교수 충원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4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와 공동으로 생명 의학 분야 연구를 진행하는 등 이미 약대 유치에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부은 고려대도 신청 인원의 절반인 25명만 배정된 이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예상했던 등록금 수입이 반으로 줄면 약대 신설에도 그만큼 투자가 위축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계획했던 시설 투자를 줄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세대(50명 신청, 25명 배정)의 고충 역시 매한가지다.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 미국 의료기관인 MD앤더슨, 펜실베이니아대와 함께 의과학 연구소개설을 준비 중이나, 정원 축소에 따라 교수 선발 및 인프라 투자 변경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들의 이런 실정을 감안, 이달 초 배정된 인원에 맞춘 운영 및 투자 계획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상당수 대학들이 교육 부실 등을 이유로 당초 투자계획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가톨릭대의 경우 장학금 비율을 50%에서 100%로 높이는 등 투자를 늘리기도 했다. 이는 교과부가 하반기께 약대 신설 및 운영 준비 관련 실사결과를 토대로 2012학년도 약대 정원 추가 배정 여부를 결정키로 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 관계자는 "당초 제출했던 투자 및 운영 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은 대학은 추가 정원 배정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약대 신설 대학 입장에선 빈약한 재정에도 불구,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투자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한편 신설 약대들이 기존 약대 교수 스카우트에 나서면서 관련 교수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연구실적이 탁월한 교수의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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