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함께 끝까지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故) 천안함 46용사'들에게 바치는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천안함 갑판부사관 김현래(27) 중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46명의 동료를 잃은 슬픔과 그들을 뒤로 한 채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목소리에 짙게 배어 있었다. 김 중사가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46용사 유가족들은 목이 메었고 눈시울은 다시 뜨거워졌다.
마지막 이별 '46용사 합동영결식'
고 천안함 46용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29일 오전 10시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내 안보공원. 평소 출동 전 임무완수 결의를 다지던 안보공원이 이날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전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이별의 자리가 됐다.
46용사들을 영원히 떠나 보내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하늘도 안 것일까. 전날까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뀌어 봄바람과 함께 따스한 햇살이 비쳤다.
해군 최고의 영예인 해군장(海軍葬)으로 거행된 영결식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전 대통령, 이용훈 대법원장, 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국무위원, 전군 주요지휘관 및 유가족 등 2,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됐다.
희생 장병들에 대한 경례와 묵념으로 시작된 영결식에서 이 대통령은 고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희생장병들에게 일일이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이 대통령은 영결식에 앞서 "고귀한 희생을 한 46용사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다"며 직접 조사(弔詞)를 낭독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해군장의 절차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조사 낭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도사는 천안함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동료 김현래 중사가 읽었다. 김 중사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충격과 혼란으로 우리는 암흑천지의 바다에 떨어졌다"며 끔찍한 사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뒤 "한 명 두 명 구조선에 올랐지만 당신들의 애끓는 영혼에는 미처 닿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46용사들의 영정을 안은 채 추도사를 듣고 있던 생존 장병 몇몇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쳤다.
헌화 및 분향에 이어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9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정박 중인 함정들은 10초간 기적을 울려 46용사들과의 작별을 슬퍼했다. 해군 군악대 중창단의 목소리로 천안함 장병들이 즐겨 부르던 '바다로 가자''천안함가(歌)'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생존장병 46명이 46용사 영정을 직접 들고 전우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비슷한 시각 백령도 연화리 해안. 주민 300여 명과 군 장병 100여 명은 천안함 침몰 해역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서 46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해상 추모제를 열었다.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는 내용의 추모시가 낭독되고 조총 발사, 조악 연주가 이어졌다. 추모제가 끝나자 주민들은 46용사들을 기리는 국화꽃을 해병대 고무보트 위에 하나 둘씩 놓기 시작했고 해병대원들은 조심스레 침몰 해역으로 가 추모글 1,000여 개와 함께 바다 위에 헌화했다.
외롭지 않은 마지막 길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을 빠져 나온 운구 행렬은 평소 출동 준비를 하던 군항 부두를 지나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해군아파트로 향했다. 운구 행렬이 군항 부두를 지날 때 함정에서는 '부웅~'하는 5초간의 기적 취명과 함께 각각 해군 정모ㆍ정복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풍선 3,000개가 하늘을 수 놓았다.
독도함 등 모든 함정의 승조원 800~900명은 정복 차림으로 뱃전에 도열해 있었다. 승조원들은 영면의 길을 떠나는 고인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일제히 '필승!'이란 구호의 '대함경례'로 최고의 예를 올렸다.
해군아파트로 가는 도로 양 옆에는 주민들과 원정초교 학생ㆍ학부모들이 46용사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주민들은 길가에 국화꽃을 뿌리며 이별을 슬퍼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와 유모차에 기댄 채 통곡하는 주민도 있었다. 해군 유치원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천안함 46용사! 사랑하는 아빠! 안녕히 가세요'라고 쓰인 펼침막을 든 채 운구행렬을 지켜봤다. 원정초 4~6학년 학생 300여 명은 그리움과 고마움의 글귀를 담은 흰색 풍선과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냈다.
한국전쟁 당시 해군 하사관으로 참전했다는 강창근(80)씨는 거수경례로 46용사들을 배웅했다. 그는 운구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손을 내리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후배들아 먼저 가 편히 쉬게나. 나도 곧 따라가겠네." 노병(老兵)의 인사와 함께 46용사들은 그렇게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멀어져 갔다.
한편, 천안함 전사자협의회(전천협)는 성명서를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
평택=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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