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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3) 김용기명과 대표 김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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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3) 김용기명과 대표 김용기

입력
2010.04.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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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삭아삭 향긋한 그 맛 '우리식 센베' 45년 고집

어릴 적 동네 골목마다 있던 '센베 유리 상자'가 요즘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70년대만 해도 서양에서 들어온 과자 대신, 유리 상자에서 꺼내 먹던 얇고 바삭한 센베 과자가 최고였다. '센베'과자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과자다. 우리말로 일부러 바꾸자면 얇게 만들어 먹는다는 뜻에서 '전병'을 부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부채꼴 과자 모양의 이름은 '센베'가 어울린다. 그렇다고 '센베'가 우리 음식이 아닌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부르는 '센베'와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먹고 만들어 온 '센베'는 그 맛과 모양이 다른 과자다. 그렇다면 자장면이나 짬뽕, 부대찌개가 당당히 우리 음식이듯, 우리 식으로 만들어 온 '센베'과자도 우리 맛이다.

열 네다섯에 고향 떠나 과자 만들기 배워

열 네다섯부터 과자를 만들기 시작한 김용기 대표는 아직도 여전히 본인 스타일의 센베를 굽는다. 1951년 정읍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또래가 누리는 학생 시절을 못 보내고 이종 고모 아드님이 운영한다는 과자공장을 찾아 상경한 때가 열다섯 나이였다. 그때 완행열차를 타고 내린 곳이 용산역이었으며, 계절은 딱 이맘때였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병으로 누우신 아버지의 수발을 다 들만큼 착한 아들을 눈물로 배웅하는 부모를 뒤로 하고 김용기 대표는 45년 과자 인생을 그렇게 시작하게 된다.

"공장이라고 해 봐야 사글세 방 하나에 기계 한 대가 다였어. 여기서 뭘 하나, 차라리 자동차 정비를 배울까 방황하다가 여름이 왔지."

얇고 바삭한 맛이 매력인 센베 과자는 고온 다습한 여름의 날씨가 치명타다. 과자는 눅눅해지고, 사람들은 과자를 잠깐 동안 찾지 않는다. 과자가 안 팔리는 여름이면, 행상을 했다. 시멘트 바닥에 좌판을 깔고 군용 담요를 덮고 앉아 과자를 파는 겨울이 오면 날씨가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때 배운 과자 기술이 결국 인생의 밑천이 되었다.

"이종 사촌 형님은 과자를 참 잘 구웠어. 무엇이든 대강 하는 법이 없었지. 반죽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했다고."

성에 안차는 반죽도 그냥 구워 버리면 잘 만들어진 과자들에 섞여서 슬쩍 팔아버릴 수 있을 것인데, 완전하지 않은 반죽은 아예 굽지 않는 다는 철칙은 오늘날 김용기 과자점에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센베 과자에 들어가는 각종 견과류, 파래 등은 모두 오랜 세월 거래를 해 온 상인들에게 직접 주문을 한다. '김용기 명과'의 센베를 한 번 입에 물면 적어도 대 여섯 개는 연달아 먹게 되는 비결이다. 정성 넘치는 반죽에 직접 고른 부재료를 아낌없이 넣는 것, 그러니까 반죽은 입에서 부드럽게 사라지고 오독오독 씹히는 들깨며 향긋한 파래가 또 과자 통에 슬며시 손을 넣게 만든다. 심지어 깨 볶는 집은 직접 가서 지키고 서 있다 가져 온다. 깨 볶는 시간이 조금만 지체 되어도 탄 맛이 나거나 해서 전반적인 과자의 맛을 헤치기 때문이다. 김용기 대표의 이런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든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부인이다. 반죽보다 값이 나가는 부재료를 과자 하나에 넘치도록 넣는 남편을 보며 참 대단한 고집이라 하신다.

"재료를 아끼면, 내 과자의 맛이 살지 않는 것을. 손님이 센베 하나를 딱 물었을 때 입 안 가득히 풍부한 맛이 느껴져야 그 맛을 인정하지."

마진을 늘리기 위해 재료에 인색해지는 것, 김용기 대표가 타협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일본 과자 영향 받았지만 우리식 센베로 정착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는 꼭 맛을 봐야 한다고 전해지는 과자들이 있다. 프랑스에 가면 마카롱을 먹는다. 달걀흰자에 아몬드 가루를 넣어 굽고, 과일 잼이나 크림을 곁들이는 과자가 개당 몇 천원이다. '일본식 센베'는 쌀 과자인데, 도톰하게 구워 간장 양념을 바른 제품으로 동경의 오래된 과자점에서는 개 당 1,500원에서 2,000원 정도에 판매된다. 우리 식으로 오랜 기간 만들고 먹어온 센베는 언젠가부터 시장 통의 천덕꾸러기 마냥 '근'으로 팔려나간다. 시장에 유통되는 센베는 박리다매로 만들다보니 재료나 반죽의 인심이 좋지 않아 식감이 좋지 않다. 부서지지 않도록 두껍게 구워서 입 안에서 사르륵 녹는 맛이 없고, 속에 박힌 땅콩에서는 오래되어 습기를 먹고 변질된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 맛'에 먹던 이들은 김용기 과자점의 가격이 비싸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자로 유명한 프랑스나 일본에서 팔리는 전통 있는 과자들에 비하면 턱 없이 낮게 책정인 가격임에도 불구, 시장에서 사먹는 '봉지과자'랑 비교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 많이 안 남았어요." 김용기 대표의 말이다. 한 때 센베 배우는 기술자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일이 워낙 고되고 제품 단가는 낮아서 중간에 손을 놓은 이들이 많다고. 특히 IMF 구제금융기를 전후해서 과자를 굽던 이들이 건설 현장으로 발길을 돌린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과자 한 길로만 달려 온 김용기 대표의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재료들 많이 넣는다고 뭐라 했는데, 이제는 잔소리 안 해요. 과자에는 재료를 후하게 쓰고 나한테는 절약해도 이해하지"라 하시는 내조의 여왕 부인과 학교 졸업 후 과자기술을 전수받은 지 7년 째 되는 아들이 함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과자 맛에 욕심이 생겨 재료를 더 넣고 반죽을 더 신경 쓴다는 김용기 대표는 실제로 중금속 위험이 낮은 합금을 이용한 과자틀을 직접 제작까지 해서 쓰고 있다. 과자의 뿌리를 이해하고, 정성을 넘치게 부어야 맛이 난다는 그는 프랑스의 마카롱이나 일본의 쌀 과자처럼 위상이 높아지도록 우리가 지켜줘야 할 명품 과자를 오늘도 굽는다.

● 부평역 근처 대로변에 위치한 김용기 명과(032-503-2494)에 들어서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 듯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분주한 대로변과 불과 유리문 한 장 차이인데 과자점 안은 따뜻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아담한 매장을 빙 둘러싸고 있는 유리로 만든 과자상자에는 이 집의 명물인 각종 과자, 술밥처럼 쪄다가 말려서 튀긴 강정 등이 고루 담겨 있다. 아삭이, 땅콩 아삭이, 직사각형, 부채과자 등 각각의 이름도 재미있다. 접시만 한 플라스틱 상자에 고루 담긴 세트가 1만2,000원, 두꺼운 종이 상자에 담겨 고급스러운 구성이 가격대별로 있다. 봄날, 차 한 잔에 곁들이면 가족들끼리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맛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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