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건축업자가 지난 20여 년 간 50여명의 검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해 왔다고 스스로 폭로했다. 업자가 검사들에게 뒷돈이나 술자리 등을 마련해 주는 이른바 스폰서 스캔들은 오랜 고질병이어서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선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을 받고 애도하는 가운데 터져 나온 검사들의 부패 행각은 한없이 초라하고 천박하게 느껴진다. 젊은 해병 46명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고, 그들을 구하려던 53세의 UDT(해군 수중폭파대) 노병이 과로로 사망하는 비극을 지켜보며 그들의 희생정신과 직업의식에 옷깃을 여미던 국민들의 눈에 스캔들 관련 검사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로 비치고 있다.
애도기간에 터진 스폰서 스캔들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최근의 일도 민심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직 총리가 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추상같이 몰아치더니 저희들은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 건축업자가 검찰의 수사기록을 뺨치는 '검사 접대 일지'를 공개한 것도 충격을 더해 준다. 검사의 이름, 접대 일시, 장소, 액수, 2차 접대 등을 꼼꼼하게 적은 그 기록을 보면 "100%가 허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업자가 녹음하여 공개한 통화 기록은 더 실망스럽다. 자신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까지 하고 있는 업자와 그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면 그 검사의 안목과 윤리의식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검찰은 스폰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앵무새처럼 엄중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런 스캔들이 뿌리 뽑히기는커녕 주기적으로 터지고 있다. 스캔들 관련 검사들은 고위직에서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검찰총장 후보가 국회 청문회에서 스폰서 파문으로 사퇴한 것이 불과 1년 전 일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을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좀더 넓게 보면 우리나라 파워 엘리트 집단의 위기다. 그들의 윤리의식과 직업정신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많은 파워 엘리트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구 시대적인 특권의식과 선민사상으로 온갖 거품을 즐기고 있다. 공직 곳곳에, 사회 곳곳에 그런 악습이 도사리고 있다.
검사윤리강령은 "검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검사의 임무는 이처럼 막중하고 신성하다. 업자에게 뒷돈이나 향응 따위를 제공 받고, 성접대 운운하는 스캔들에 휩쓸리는 것은 검사라는 직업을 배신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은 특권과 향락을 보장해 주는 '면허장'이 아니다.
지난 2008년 사창가 출입이 밝혀져 뉴욕 주지사에서 물러난 엘리엇 스피처는 뉴욕 주 검찰총장 시절 뉴욕 증권거래소장을 기소하는 등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던 엘리트 검사였다. 그는 콜걸 스캔들이 터지자 "나는 오랜 공직생활에서 그 누구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제 그 기준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주지사 직을 사임했다.
이름없는 영웅들 앞에 각성해야
"나는 파워 엘리트이므로 남의 돈으로 술을 마시고 향락을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더러운 착각이다. 검사든 그 어떤 파워 엘리트이든 특권의식 대신 철저한 직업정신을 가져야 민주사회가 지탱된다. 그것은 대패와 씨름해야 하는 목수의 직업정신과 다르지 않다.
검사의 스폰서 스캔들은 직업의식의 결여, 전근대적 관존민비 사상, 선민주의가 만들어낸 병폐다. 그것은 엄중한 처벌로 뿌리 뽑히는 것이 아니라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업정신과 자존심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휴식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UDT의 전설' 한주호 준위에게 쏟아졌던 온 국민의 존경과 애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악조건 속에서 묵묵히 자기 책임을 다하는 이름없는 영웅들 앞에서 이 나라의 파워 엘리트들은 크게 각성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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