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군을 육성하려면 조직 스스로가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국방부가 지난해 5월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유사시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방대한 군 조직이 최고 지휘부부터 말단 병사까지 톱니바퀴 맞물리듯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군이 시스템의 중요성을 계속 말해 왔지만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드러난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보고 라인 뒤죽박죽
사고 발생 시각을 파악하는 가장 기본적 과정에서부터 군 내부 보고 라인에 혼선이 빚어졌다. 지난달 26일 오후 9시16분께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큰 소음을 청취해 위성통신망으로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12분 뒤인 9시28분께 천안함 포술장은 휴대폰으로 해군 2함대사령부에 사고 발생을 알렸다. 이러한 두 가지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2함대사령부는 핫라인으로 “9시30분께 상황이 접수됐다”고 해군 작전사령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해작사는 방공진지에서 청취한 미상의 소음이 천안함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해 “상황 시각은 9시15분께”라는 내용의 팩스를 합동참모본부에 보냈다. 2함대사령부의 보고 내용을 무시한 것이다. 합참도 마찬가지였다. 해작사의 보고와 상관없이 2함대사령부로부터 핫라인으로 상황을 접수한 시간인 9시45분께를 사고 시각으로 혼동해 언론에 그대로 발표했다. 최초 보고가 작전의 성패와 직결되는 군 조직에서 하급부대의 보고와 상급부대의 판단이 따로 작동한 셈이다.
늦장 보고는 더 큰 문제였다. 합참은 9시45분께 초기 상황 파악을 완료했지만 상부에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상의 합참의장은 사고 발생 49분 만인 10시11분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0시14분께 첫 보고를 받았다. 합참에 근무하는 해군 장교가 청와대 파견 중인 선배 장교에게 휴대폰으로 침몰 사실을 알려 이명박 대통령이 10시께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이후였다.
볼썽사나운 책임 떠넘기기
이에 대해 김 장관은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합참 지휘통제실 반장(대령)이 의장과 장관에게 보고하는 걸 깜빡 잊고 청와대에 먼저 보고했다”고 답변해 빈축을 샀다. 자칫 부하 장교에게 책임 전가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김 장관은 19일 국방위에서는 “부하들과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휘통제실 반장이 나한테 전화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가 여야 의원들로부터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관리 체계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이라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김 장관의 잇단 발언은 비상시 보고가 매뉴얼과 절차가 아닌 개인의 친소 관계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을 자인한 격이다.
손발이 안 맞는 육ㆍ해ㆍ공 합동군 작전의 문제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천안함이 외부 폭발로 해군전술지휘체계(KNTDS)상에서 사라진 9시22분께부터 포술장이 최초 보고한 9시28분께까지 6분간 군은 천안함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합참이 “서해에서 최고 작전태세인 서풍_1을 발령했다”고 밝힌 시각은 사고 후 18분이 지난 9시40분이었다. 해군 링스 헬기는 사고 25분 후인 9시47분께, 공군 전투기는 1시간18분이 지난 10시40분께야 출격했다. 대잠 전문 P_3C 초계기는 아예 출격하지도 않았다. 또한 사고 직후 해경이 갑호경계령, 경찰도 을호경계령을 발령했지만 전군비상경계태세는 다음 날에서야 발령되는 등 군의 상황 인식이 안이했다.
사조직 문화 탈피해야
전문가들은 군 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자문위원은 29일 “과거 하나회가 건강한 조직 운영을 왜곡해 문제가 됐는데 그런 사조직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며 “사조직 문화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군 중심의 최고 지휘부가 국방부와 합참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보고 라인이 엉키고, 해ㆍ공군과 엇박자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해군 예비역 장성은 “군령은 합참의장, 군정은 참모총장으로 나눠져 유사시 작전 수행이나 책임 소재에서 애매한 점이 많다”며 “결국 합동군 전력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각군 이기주의로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아무리 좋은 무기와 장비가 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기에 사후 수습 과정이 중요하다”며 “형식뿐인 매뉴얼에 기대지 말고 평소 철저한 훈련과 완벽한 숙지를 통해 시스템을 체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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