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e-BOOK) 열풍이 불고 있다. 전자책 시장은 2000년의 반짝 열기 이후 한동안 잠잠했으나, 2007년 아마존의 ‘킨들’이 오프라인 서적의 디지털화와 대중적인 콘텐츠 소비의 가능성을 열면서 새롭게 뜨거워지고 있다.
전자책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단말기를 만드는 대기업과 온라인서점과 같은 유통사이다. 국내에서는 인터파크ㆍLG의 ‘비스킷’, 교보문고ㆍ삼성전자의 ‘SNE-60K’, 아이리버의 ‘스토리’, 넥스트 파피루스의 ‘페이지원’ 등 전자책 단말기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 스마트폰, 아이폰 등이 상용화하면서 전자책이 뜰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으며, 많은 고객을 확보한 온라인 서점들도 단말기 업체와 연대해 시장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저작권 문제 해결이 관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출판사들은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 (문학동네)를 정가 1만2,000원의 종이책과 7,200원의 전자책으로 동시 판매하고 있다. 인터파크도 황석영의 <강남몽> 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이 책을 펴내는 출판사 창비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강남몽> 은교>
출판사들이 전자책 언저리에서 아직도 서성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저작권 문제가 명쾌히 정리되지 않았다. 콘텐츠 제공업체(CPㆍ출판사)와 서비스 제공업체(SPㆍ유통사)가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에 합의하면서 저작권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듯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DRM 패키징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좀 더 확실하게 콘텐츠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전자문서의 텍스트ㆍ그림ㆍ동영상ㆍ음악파일 등의 위조나 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워터마킹 기술 등을 도입해 저작권 보호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런 기술을 도입하려면 관련 업계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구축하거나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간 우수 출판 콘텐츠의 전자책 제작지원, 디지털 저자 발굴 지원, 전자출판 1인 창조기업 육성지원 등 곁가지 방안만 줄줄이 내놓던 문화체육관광부가 26일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을 통해 전자출판 콘텐츠 관리센터(가칭)를 두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문화부는 이번 안을 마련하면서도 출판계를 소외시켰다. 문화부가 제시한 전자 출판 콘텐츠 관리센터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내놓은 대안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시된 전자책은 30만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5만~6만종이고, 그마저도 대부분 철 지난 비인기 콘텐츠들이다. 국내 최대 전자책 업체였던 북토피아는 자체 생산한 12만종의 전자책 중 10만8,000종을 단 한 부도 팔아보지 못한 채 도산했다.
대세론보다 수익모델 창출을
출판 현장에서는 전자책이 대세라고 여기면서도 과연 새로운 독자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체들은 분명한 대답을 회피하면서 대세론만 유포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은 가능성이 아닌 수익모델이 발견돼야만 활짝 열릴 것이다.
인간이 달에 갈 수 있었다는 것과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달나라에 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디지털 공간이나 모바일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으려면 저작권 보호라는 난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인 저자들이 안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렇지 못하면 이번 열풍 또한 가능성만 보여주고 이내 사그라질 수도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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