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중 이모 교사는 최근 낡은 과학 실험기기를 교체하려다 애를 먹었다. 지난해까진 서면으로 기안한 뒤 결재를 받아 처리했으나, 올해부턴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물품 구매 업무는 학교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으로만 처리하는 것으로 규정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구매 물품의 이름과 규격, 수량까지 입력하는 데 성공했으나 다음 결재 단계로 넘어가는 길목인 실험 기기의 단가를 입력하는 부분에서 막혔다. 인터넷을 온통 뒤져 봤지만 해당 품목에 대한 가격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교사는 업체 여러 곳에 문의한 끝에 단가를 알아내 입력하는데 '성공' 했지만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왜 교사가 물품의 단가 조사까지 해야 하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교의 재정ㆍ회계 업무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3월 전국 초중고교에 전면 도입된 에듀파인(학교 회계시스템)이 복잡한 사용법과 절차 때문에 외면받고 있다. 오히려 일선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 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교사가 처리해야 하는 공문 건수를 절반 이상 줄이겠다는 내용의 교원 업무 경감 방안을 내놓긴했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시스템 정착에 대한 준비부족으로 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8일 공개한 에듀파인 실태는 교사들로부터 외면받는 에듀파인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초중고 교사들로 구성된 '에듀파인 실태 자문회의'는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연수와 준비가 부족하고, 물품 구매시 단가 조사로 인해 업무가 과중되고 있으며, 시스템과 회계 관련 용어가 복잡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용자가 몰리는 특정시간에 서버 접속이 지연되는 것도 허점으로 꼽혔다.
경기 B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맡고 있는 박모 교사는 "에듀파인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예산 책정부터 입력까지 일일이 매뉴얼을 보면서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면 정작 수업은 뒷전이다"고 하소연했다.
교총 관계자는 "학교 회계 투명화를 위한 시스템 도입은 공감하지만 시범 운영 과정에서 시행착오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 전면 시행 대신 시범 운영 기간을 늘리자고 교과부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교총이 2,470명의 일선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에듀파인은 낙제점이었다. 에듀파인의 전면 실시에 대해 96.1%(2,329명)가 '준비가 부족해 시범 운영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고, 45.3%(1,083명)는 '잡무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려가 고스란히 현실화 한 것이다.
에듀파인이 전면 시행된 지 2개월째가 되면서 서울시교육청에는 하루 평균 250~300건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이 업무 부담과 입력 방법 등을 묻는 질의다. 시교육청은 아예 6명의 인력을 따로 배치해 에듀파인 관련 콜센터를 운영할 정도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시스템 정착 과정에서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의 문의와 불만 사항이 접수되고 있다"며 "다른 교육청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 측은 "시행 초기 교사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청별로 별도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일선 교사들은 전면 시행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준규 기자
● 에듀파인
학교회계시스템이다. 공·사립 초중고 재정·회계업무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방과후학교 등 각족 사업담당 교직원이 문서로 결제하면 기본 방식을 정보시스템에 입력, 처리하는 형태다. 전국의 공립 초중고교 외에도 교육청에서 재정결함보조금(인권 운영비)을 지원받는 사립학교는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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