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덮치고 있는 100년만의 냉기(冷氣)에 농작물을 비롯한 한반도의 자연이 뒤틀리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꽃을 피우고 싹을 틔워야 할 과수와 농작물이 비바람을 동반한 차가운 날씨에 냉해로 시들고, 어류마저 찬 수온에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 감염되는 등 농어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28일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7.8도로 평년(19.3도)보다 11.5도나 낮아 4월 하순 기온으로는 1907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10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 겨울 시베리아로 확장했던 북극의 한기가 4월 하순 현재까지 한반도에 머무르면서 올 봄(3월~4월 중순)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0.6도 낮았다. 특히 4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1.7도 낮은 9.9도를 기록했다.
이상 저온에 비까지 자주 내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올 봄 전국 강수일수는 최근 40년 중 가장 많은 19.6일(평년 12.9일)을 기록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비가 내린 꼴이다. 찌뿌드드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햇빛마저도 보기 어렵다. 올 봄 전국 평균 일조시간은 247시간(평년의 73%)으로 최근 40년 동안 가장 낮았고 대구는 228.5시간으로 1909년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부족한 일조량과 이상저온으로 농작물은 직격탄을 맞았다. 충청권의 대표적 과수인 배는 꽃눈이 제대로 트지 못하고, 경북 성주참외는 속에 물이 차서 먹지 못하는 발효과(醱酵果) 현상으로 출하량이 예년의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복숭아, 수박, 토마토, 오이, 고추, 하우스 감귤 등도 생육이 부진하거나 얼어 죽어 전국의 시설재배 면적 5만1,000여ha 중 1만4,000㏊(28%)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집계했다.
연근해에서는 저수온 현상으로 양식 어류들이 사료를 제대로 먹지 않아 어체(漁體)가 약해지면서 저온성 비브리오 등 질병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종묘 생산업체도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할 범위가 늘어나 생산비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상저온 여파로 농수산물의 출하량이 대폭 줄어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양파 조생종은 최근 열흘 사이에 가격이 11.7% 올랐고, 수온 저하로 갈치 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1%나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농민들의 시름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일조량 부족으로 피해를 본 농가 3만64곳에 융자 또는 보조금으로 3,46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정부 대책이 피해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등 종합적인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영기자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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