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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 쾌거/ 체력·의지… 그러나 그녀에게 '과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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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 쾌거/ 체력·의지… 그러나 그녀에게 '과욕'은 없었다

입력
2010.04.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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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에도 11시간을 넘게 산을 올랐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오르느라 체력은 더 많이 소진됐다. 하지만 그는 또 눈 앞의 고지를 향해 올라야 했다. 27일 새벽 1시45분(현지시각) 텐트 밖 컴컴한 어둠 속으로 발을 내밀었다. 일행은 서로를 자일로 묶고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숨은 더욱 가빠왔다.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발 4,500~5,000m에선 공기 중 산소량이 해수면의 절반 정도로 줄어드는데 8,000m를 넘어서면 3분의 1로 줄어든다. 아무리 들이마셔도 충분치 않은 산소량이다.

불굴의 정신력과 체력, 의욕의 상승효과

산악인들은 "마치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처럼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사리판단이 힘들고, 몸도 맘대로 가누기가 쉽지 않다"고 그 상황을 설명한다. 그 험난한 8,000m급 고지의 가파른 벼랑을 산소마스크도 없이 무산소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 13시간이 넘는 동안 먹은 거라곤 비스킷과 사탕 몇 알뿐이다.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고도와 싸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섰고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히말라야 14좌를 여성 최초로 완등한 오은선 대장은 우람하지 않은 155㎝의 단신이다. 그 작은 키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체력과 정신력이 숨어있다. 오 대장의 심폐력은 일반인의 두 배를 넘는다. 대학시절 대학산악연맹이 매년 여는 마라톤대회의 여자 부문 1등은 언제나 오 대장 차지였다. 피로회복 속도도 마라토너 황영조 보다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오 대장은 산을 사랑한 만큼이나 산에 대한 의욕도 남달랐다.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 원정대에 포함돼 떠났을 때다. 당시 지현옥 대장과 다른 대원 3명만 정상에 올랐고, 오씨는 밑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기필코 다음엔 직접 올라가리라"는 다짐을 했다. 이후 2004년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정해 한을 풀었고, 2007년 K2를 밟고 난 뒤 '14좌 완등'이란 새로운 목표를 가슴에 굳게 새겼다.

즐기되, 휩쓸리지 않은 경쟁

당시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부르너는 10개 봉을 올라 있었고,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도 9개 봉을 올라 이제 5개 봉을 오른 오 대장을 저만치 앞서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고 고미영씨도 14좌 완등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따라잡을 사람은 저만치 달아나는데 뒤쫓는 후배는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오대장은 무서운 속도전을 시작했고 연속등정이란 카드로 역전을 이뤄냈다. 2008년과 2009년에 연속으로 4개 봉우리씩을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여성산악회의 배경미 회장은 "오은선 대장의 성과를 단순히 선의의 경쟁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만일 경쟁에 눈이 어두워 과욕을 부렸다면 벌써 사단이 났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경쟁은 오 대장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한번 목표를 설정하면 그곳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타고난 체력과 철저한 자기관리,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이를 이뤄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니다 싶으면 정상을 100m 남겨놓고도 하산을 결정할 수 있는 게 오 대장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그를 높이 산다"고 말했다.

블랙야크의 든든한 후원

14좌 완등을 이루기까지 오 대장의 인생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컴퓨터 학원강사, 전산직 공무원, 학습지교사를 거쳤고 직접 스파게티 집을 열기도 했다.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여러 번 사표를 던져야 했고, 또 꿈의 설산을 가기 위해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부터 등반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웬만한 원정대에 필요한 예산은 1, 2억원대다. 항공료와 장비, 한두 달을 버텨야 하는 식대와 셰르파 인건비 등이 만만치 않다. 산악인들이 "산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게 후원을 구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오 대장이 2008년부터 무서운 속도로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올라 설 수 있었던 것에는 스폰서의 탄탄한 지원의 힘도 컸다.

■ 오은선 몸 얼마나 다를까.

● 키: 155㎝

● 몸무게: 48~50kg 고산 등반에 적합한 작은 체구

● 심폐기능: 일반인의 두 배

● 최대 산소 섭취량: 63.8㎖

(일반인 30~40㎖, 남자 축구선수 60.9㎖, 남자 철인3종 선수 63.7㎖)

● 피로 회복 능력인 젖산 회복률(71.85%)은 마라토너 황영조 보다 높아(일반인은 50% 수준).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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