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댁 성묘차 충청도에 있는 시고모님 댁을 찾았다. 산소에 도착해 안고 있던 아이를 풀밭에 내려놓으려는데, 웬일인지 이 녀석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영문을 몰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손으로 풀밭을 가리키며 연신 "무서워, 무서워" 했다. 초록빛 짙어가는 풀들 사이로 눈에 띤 건 개미뿐이었는데.
바로 그 개미가 무섭다는 얘기였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자주 봐 익숙해진 보일락말락 한 개미가 아니라 어른 손톱만큼 '거대한' 개미가 아이 눈엔 무서워 보였던 게다. 평소 아이가 양치질하기 싫어할 때 "이 안 닦으면 개미가 꽉 물어, 얼마나 아픈지 몰라" 하고 겁준 엄마 때문이기도 하다.
없는 말 지어낸 건 아니다. 어떤 개미는 턱으로 자기 몸무게의 300배나 되는 힘을 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총알 날아가는 속도를 측정하는 고속촬영기법으로 올가미개미가 무는 속도를 쟀다. 시속 200km 이상이었다. 엄청난 속도에서 놀라운 힘이 나온 것이다.
이 밖에도 개미에 관해선 흥미로운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 물고 갈 땐 자기 몸무게의 최대 6배, 끌고 갈 땐 64배나 무거운 먹이까지 감당하는 개미도 있다. 뒷다리 근육이 운동선수처럼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 사는 침개미의 머리와 배에는 자성을 가진 철 성분이 들어 있다. 덕분에 침개미는 자기 몸을 나침반처럼 이용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며 이동한다. 개미는 중추신경계가 발달하지 못했지만 다리 6개로 온갖 장애물을 넘어다니며 어떤 지형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한다. 과학자들은 개미의 이 행동방식을 본떠 6족 화성탐사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모든 개미가 그리 부지런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미박사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개미를 주로 봤기 때문에 '개미=근면'이라는 '공식'이 생겼다고 했다.
정작 땅속 개미굴에 있는 70∼80%의 개미는 일하지 않는다는 것. 최 교수에 따르면 일 안 하는 개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종의 '대기조'다. 개미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의 발을 묶어두도록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엄마가 있으면 개미가 안 물어"하고 아이를 설득하면서 문득 개미사회의 모습이 인간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여성인력이 그토록 가정에 묶여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에 '옳은 방향'은 없다고 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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