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올해 4ㆍ19혁명 50주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4ㆍ19 50년을 말한다'를 주간 연재했다. 이 기획은 50년 전의 혁명을 직접 체험했던 4ㆍ19세대 문인ㆍ학자들의 생생한 기억과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은 기고 및 대담을 13차례에 걸쳐 게재, 독자들의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기획 마지막 순서로 문학평론가 김병익(72)씨와 사회학자 김동춘(51) 성공회대 교수,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40)씨의 좌담을 마련했다. 김병익씨는 4ㆍ19세대를 대표하는 평론가이며, 4ㆍ19 한 해 전에 태어난 김동춘 교수는 6ㆍ25 등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있는 학자, 1970년생인 김선우씨는 산업화ㆍ민주화시대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해온 작가다.
세 사람은 27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각자의 세대적 입장에서 4ㆍ19의 의미를 이야기한 뒤, 4ㆍ19 정신의 계승에 대해 세대를 뛰어넘는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김동춘=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6ㆍ25전쟁 60주년, 광주항쟁 30주년 등 기념할 사건이 많은 해인데, 50주년을 맞은 4ㆍ19혁명에 대해선 정부, 정치권, 학계 모두 관심이 적다. 그런 점에서 한국일보가 '4ㆍ19 50년을 말한다' 기획을 마련, 혁명의 주역이자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인 4ㆍ19세대의 회고를 통해 4ㆍ19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 것은 의미가 크다.
▦김병익= 나를 포함한 4ㆍ19세대에겐 우리 세대의 경험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지면이었다. 다만 이번 기획이 4ㆍ19를 민족사의 다른 중요 사건들과 연계하고 젊은 세대들의 시각까지 반영했더라면 그 의미가 좀더 생생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김선우= 4ㆍ19세대의 생생한 육성을 접하면서 4ㆍ19혁명을 새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나아가 한국 민주화운동의 뿌리인 4ㆍ19가 젊은 세대에게 아득한 메아리가 아닌, 의미있는 역사가 되려면 4ㆍ19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완의 혁명 vs 현재진형형의 가치
▦김동춘= 나는 유신 치하였던 197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반정부 입장에 선 학생들에게 4ㆍ19혁명은 우리 힘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는, 어둠 속의 등불 같은 희망이었다. 4ㆍ19는 그렇게 60~7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어온 동력이었다. 한편으로는 일부 4ㆍ19세대 인사들이 군사정권에 협력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선배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김병익= 정치적 성과로만 보자면 이듬해 군부 반동정치가 들어선 점, 일부 4ㆍ19세대가 유신체제에 동참했다는 점 등에서 4ㆍ19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나 또한 5ㆍ16쿠데타의 발발을 '4ㆍ19의 무참한 패배'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젊은 날 많은 고민을 했다.
▦김동춘= 독립협회에서 싹을 틔웠다가 일제 식민지, 외세에 의한 해방, 전쟁을 거치며 맥이 끊겼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본격 가동된 사건이 4ㆍ19였다. 서구의 기준으로 보자면 '근대 부르주아 혁명'의 출발인 셈인데, 이는 5ㆍ16으로 좌절됐다가 87년 6월항쟁에서 어느 정도 미흡한 채로 일단락됐다. 그런 점에서 4ㆍ19는 결론적으로 미완의 혁명이 아니었나 싶다.
▦김선우= 4ㆍ19를 실패한 혹은 미완의 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내가 감각하기에 모든 혁명은 현재진행형이고, 일상의 모든 세분화된 면에서 항상 진행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김병익= 동감한다. 4ㆍ19는 민주주의, 자유, 정의, 인권 등을 국민적 가치 질서로 설정, 운동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사건이었다. 천만다행히도 4ㆍ19가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민주적 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확신이 생겼고, 이는 이후의 여러 반혁명적, 퇴행적 역사에 저항하는 힘이 됐다. 이같은 4ㆍ19의 정신적 가치는 재평가돼야 한다.
한글세대의 문화적ㆍ지적 성취
▦김선우= 우리 세대에겐 4ㆍ19가 한글세대의 출현과 함께 이뤄졌다는 점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을 받아 모국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세대가 현실에서 던진 질문들이 곧 4ㆍ19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이 바로 자유에 대한 갈망,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었고, 그것이 민주화의 계기를 만들고 추동해온 힘이 됐다는 것으로도 4ㆍ19의 현재적 의미는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4ㆍ19의 후예들은 모국어에 기반한 창작 작업을 통해 한국적 문화예술의 아우라를 형성했다.
▦김동춘= 나도 대학 시절 김승옥, 이청준, 박태순 선생을 비롯한 4ㆍ19세대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박태순 선생과는 20년 전 함께 인터뷰집 출간 작업도 했다. 그러면서 4ㆍ19세대는 정신적으로 그 전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개인주의와 자유를 중시했고,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4ㆍ19가 가져온 정신적 해방을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김병익= 4ㆍ19세대로서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의식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유학생이 아니었다면 좌파적, 진보적 사상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 이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학 다닐 때 경제사 강의를 들었는데 교재에 마르크스 이론이 나오자 담당 교수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긴 했지만 여러분에게 강의할 수는 없다"며 건너뛰었다. 그렇다보니 4ㆍ19 때 남북 학생 대화가 추진되기도 했지만, 당시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좌파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70년대 와서야 후배들에게 마르크시즘, 진보주의 사상에 대해 듣고 공부했다. 후배들이 적잖은 희생을 치르며 확보한 지적인 자유를 미안하게도 공짜로 얻은 셈이다.
▦김동춘= 전쟁이 끝난 지 7년, 아직도 도처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학생들이 놀랍게도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4ㆍ19세대가 이전 세대와 이념적, 역사적으로 급격히 단절된 세대였기 때문이다. 해방 공간에서 자유주의부터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갖고 공존하던 세력들이 짧은 기간 동안 분단, 전쟁의 격변을 겪으며 극우 반공주의를 뺀 모든 세력이 도태되는 과정에서 세대 간 단절이 생긴 것이다.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힘"
▦김병익=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4ㆍ19혁명 이후 비로소 이 땅에 '변화가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한일 강제병합, 해방 이후의 분단과 전쟁 등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변화는 불행과 시련의 다른 이름이었고, 이런 경험은 사람들의 내면에 일체의 변화를 부정하는 공고한 보수주의로 자리잡았다. 그런 점에서 부패 권력을 넘어뜨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세운 4ㆍ19의 경험은 한국인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이젠 바꿔야 한다'는 말이 선거의 단골 구호가 됐고, 경제개발계획처럼 현재와 미래를 기획하는 정책이 마련됐다. 해외 곳곳에서 산업 역군과 유학생들이 활약하고, 해외 문물 도입에 적극 나서게 된 것도 4ㆍ19가 가져온 의식 변화의 결실이다.
▦김선우= 2000년대 일련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4ㆍ19혁명의 맥박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특히 재작년 촛불집회에선 불의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그러니까 4ㆍ19에 기원을 둔 광범위한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확산되면서 무려 100만명을 거리에 나오게 했다. 처음엔 학생들의 호기로운 장난처럼 여겨지던 집회가 점점 확장돼 스스로 역사적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김병익 선생님이 이번 한국일보 기획에 기고한 글에 쓰셨듯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엄청난 힘이 잠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김병익 약력
▦1938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65~75년 동아일보 기자 ▦1970년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 ▦1975~2000년 문학과지성사 대표 ▦2005~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 위원장 ▦현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김동춘 약력
▦1959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2000~01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02년 참여사회연구소장 ▦2005~09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선우 약력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등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 등 수상 캔들> 나는> 내> 도화>
왼쪽부터 김선우, 김병익, 김동춘씨가 환한 모습으로 4ㆍ19 50년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리=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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