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하다 친구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먹했던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 세상 참 좁다는데 공감하며 말이다. 세상은 과연 얼마나 좁은 걸까. 전엔 평균 6명만 거치면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4명만 거치면 된다. 이 변화 사이에 '트위터'가 있다.
6단계 분리→4단계 분리
1960년대 후반 스탠리 밀그램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300통의 편지를 캔사스주와 네브라스카주에 뿌렸다. 내용은 그 편지를 보스턴 근교에 사는 아무개에게 전달해달라는 것. 봉투에는 전달자의 이름을 적도록 부탁했다.
아무개에게 배달된 편지가 전달된 경로를 분석한 결과 평균 5.5번의 단계를 거쳤다. 처음 편지를 받은 사람 이후 약 6번째 사람이 아무개라는 말이다. 6단계만 거치면 세상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실험은 '6단계 분리'라고 불리며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와 전산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인스턴트 메신저와 카페, 블로그,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 소통 방식도 점차 진화해왔다. '아는 사람'도 늘었을 법하다.
문수복 KAIST 전산학과 교수팀은 트위터에서 지난해 6∼9월 사용자 4,000만여 명이 남긴 활동 기록을 모아 컴퓨터로 분석했다. 트위터에선 사용자가 자신의 의견이나 관심 있는 정보를 '팔로우(follow)' 또는 '팔로워(follower)'한 사람들과 주고받는다. 분석 결과 트위터에선 '4단계 분리'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문 교수는 "트위터에선 사람들끼리 평균 4.12단계를 거치면 연결됐다"며 "6단계 분리가 4단계 분리로 바뀐 게 트위터만의 영향인지 그 전부터 있던 다른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네트워크와 닮은꼴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는 인간관계의 경향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오프라인 네트워크에선 '유유상종'이 나타난다. 인기 많은 사람은 인기 많은 사람끼리 어울리고, 사장은 사장끼리 만나며 끼리끼리 모인다. 사회학에선 이런 경향을 '호모필리(Homophlily)'라고도 부른다.
어떤 사람의 오프라인 친구 수를 X축에, 친구의 친구 수를 Y축에 표시해 그래프를 그리면 기울기가 양(+)의 값을 갖는 직선이 나온다. 유유상종이 적용되는 경우다. 온라인 친구로 이 그래프를 그리면 상관관계가 없는 그림이 생긴다. 실제로 문 교수팀이 트위터의 팔로우, 팔로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호모필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강병남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음의 기울기 그래프는 지금까지 생체 내 단백질 상호작용 관계나 항공노선, 웹사이트 링크처럼 기능 면에서 효율이 중요한 네트워크에서 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항공노선도를 보면 모든 도시에 비슷한 수의 항공노선이 있는 게 아니라 많은 항공편을 가진 몇몇 허브(연결고리) 도시가 항공편이 적은 작은 도시를 연결하는 모양새다.
강 교수와 김두철 서울대 물리ㆍ천문학부 교수,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팀은 국내 한 대학의 내부 온라인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보통 오프라인 네트워크는 직장 동료나 대학 동창, 고교 친구처럼 몇 개 그룹으로 나뉘며, 한 사람이 여러 그룹에 동시에 속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강 교수는 "온라인에선 여러 그룹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며 "이들이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며 온라인 인간관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변화, 티핑 포인트
온라인 네트워크에 개인의 작은 의견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 시점을 지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그 시점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가열하면 점점 뜨거워지다 100℃에 이르자마자 끓기 시작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때는 끓는 시점(100℃)을 임계점(critical point)이라고 말한다.
티핑 포인트와 임계점의 차이는 외부 요인의 개입 여부다. 물을 끓게 하려면 외부에서 온도를 높여줘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의 변화는 자발적이다. 몇몇 사람들의 의견이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바뀌는 시점이 외부의 특정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 경향이나 티핑 포인트 같은 사회적 현상을 정량적으로 연구하기에 적합한 데이터가 바로 온라인 네트워크다. 전산학자와 물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트위터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활용 가치뿐 아니라 데이터 분량도 크게 늘었다. 최근 영국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온라인 네트워크로 데이터가 급증한 요즘을 '페타바이트(PB, 1PB=1,000조Byte)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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