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들을 대표하는 금융투자협회에 '실적할당을 통한 고객유치 캠페인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문 한 장을 보냈다. 자칫 과열되기 쉬운 금융회사들의 고객확보경쟁을 염려하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공문이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보내는 단순한 종이 한 장도 금융회사나 협회 입장에선 결코 대수롭지 않을 수 없었다. 협회는 즉시 이 공문내용을 '내규'에 반영했다. 금감원의 가벼운 공문이 무거운 행정지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28일 금융위원회가 낸 행정지도 운영실태 자료를 보면, 감독당국과 금융회사간에 벌어지는 이런 적나라한 실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위 조사 결과, 금감원이 밝힌 금융회사들에 대한 행정지도는 33건.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으로부터 166건의 행정지도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 격차가 100건이 훨씬 넘고 있다. 금감원은 행정지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금융회사들은 행정지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다.
물론 금융회사들이 감독당국의 한마디 한마디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인 탓도 있다.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무작정 내규에 반영하는 게 안전하다는 '면피심리'가 작용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33건과 166건의 어마어마한 간극은, 오랜 관치의 잔재이자 감독당국과 금융회사의 관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차제에 행정지도운영방식을 바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급적 행정지도를 최소화하고, 정말 필요한 것은 법령 같은 상위규정으로 제도화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회사의 입장을 헤아리는 감독당국의 마인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다친다는 흔한 속담처럼, 힘 센 기관일수록 힘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강화해야 할 것은 감독이지, 창구지도나 행정지도가 아니다.
손재언 경제부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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