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을 아십니까.
'코트의 제갈공명' 신치용(55) 삼성화재 감독이 프로배구 챔피언 3연패와 통산 네 번째 챔프에 오르자 배구계 안팎에서 "이건 배신이야"라는 우스개 말이 농반 진반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화재의 우승 독식이 한국배구의 저변 확대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측면에서 배신이란 의미다. 하지만 배신이란 말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배신은 바로 '배구의 신(神)'을 약칭한 말이다. 야구판에서 김응룡 삼성라이온스 사장이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을 두고 '야신'(야구의 신)이라고 칭한 것을 빗대서 한 표현이다. 프로배구 출범 6년 만에 V4고지에 오른 신감독은 프로배구 출범전인 슈퍼리그를 8연패 하는 등 '삼성화재=배구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킨 명 조련사다. 이쯤 되면 배신이란 말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마음으로 지휘한다
그렇다면 그를 배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리더십은 뭘까. 답은 지극히 평범했다. '마음으로 지휘한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프로선수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일방 통행식의 리더십은 맞지 않다"며 인화를 최우선 요건으로 꼽았다. 그는 이어 "선수들과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고, 소통하면 경기는 저절로 풀린다"며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특히 "내가 배운 배구의 모든 것은 초ㆍ중학교때 완성됐다"고 말했다. 탄탄한 기초를 강조하는 은사들에게 배운 것이 지금의 '배신'을 만든 토양이라는 것이다. 신 감독은 그 중에서도 서브와 서브리시브의 중요성을 틈날 때마다 강조한다. 서브를 넣고, 받는 기본이 완성될 때 비로소 공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경기 중 작전타임때도 큰 소리를 내는 법이 거의 없다. '네 자신을 위해서 배구를 하라' 이런 정도가 가장 격한 메시지다. 특별한 작전도 없다. 큰 맥만 짚어주고 선수들 스스로 경기를 풀어나가게끔 믿고 맡긴다. 여기에 한국전력 배구단 시절 고(故) 양인택 감독밑에서 코치로 지내면서 양 감독의 인간 존중의 리더십을 배웠다고 말했다. 문용관 KBS N해설위원은 인화를 중시하는 신 김독의 지휘방침을 '물과 같은 부드러운 리더십'이라고 정의했다. 문 해설위원은 '신치용 배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삼성화재의 조직력도 팀 구성원들의 인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실제 신 감독은 용병을 뽑을 때도 실력보다는 인성을 먼저 본다고 했다. 혼자 잘난 척하는 독불장군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코트의 챔피언...집에서도 금메달
코트에 서면 오직 승리밖에 모르는 냉혈한 신치용도 시즌 종료 후에는 자상한 남편과 후덕한 아버지로 돌아간다. 28일 아내 친구들과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다는 그는 시즌 내내 묵묵히 뒷바지해온 아내의 내조에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냈다고 말했다. 두 딸 혜림(28), 혜인(23)과도 자주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그는 딸들의 연애상담까지 해주는 부드러운 아버지다. 특히 막내딸 혜인이 현대캐피탈 주포 박철우와 사귀는 것을 4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철우를 사윗감으로 반(?)승낙한 신감독은 막내 딸에게 운동선수와 결혼하려면 든든한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교사자격증 취득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마도로스를 꿈꾼 신치용...아직도 설렌다
신 감독은 부산의 '배구 명문' 성지공고와 성균관대에서 세터로 활약하면서 선수생활을 했다. 한국전력 코치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당시 42세의 나이로 95년 삼성화재 배구팀 창단감독을 맡은 이후 16년간 현역으로 뛰고 있다.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장수 현역 감독이다. 그 동안 14번의 대회에서 12차례나 챔피언 타이틀은 그의 몫이었다. 승률 85%. 가히 한국배구의 '배신'이자 지존의 위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삼성화재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감독으로 2001~02 아시아배구 선수권 2연패와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올 11월 중국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감독을 맡은 신 감독은 "중국과 일본에 질 이유가 없다"며 금메달 사냥을 자신했다.
어린 시절 고향(거제도)에서 넓은 바다를 보며 바다목장 경영을 꿈꾸기도 했다는 그는 "만일 배구선수가 안됐다면 마도로스(항해사)가 됐을 것"이라며 지금도 항구를 넘나드는 배를 보면 그때의 꿈이 떠올라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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