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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중년들의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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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중년들의 동창회

입력
2010.04.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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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졸업한 지 거의 30년 만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20여 명의 동창들이 왔다. 놀라웠다. 지방 도시의 이름 없는 학교에 다닐 때는 이렇게 서울에서 자리 잡고 살 줄은 몰랐다. 사람의 얼굴은 어떤 세월의 풍파에도 몰라보게는 변하지 않았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도 얼굴을 알아볼 만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눈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월에 눈매는 처졌어도 눈빛은 여전했다. 장난꾸러기는 그대로 장난스런 눈빛이었고, 똑똑한 아이는 그대로 똑똑한 눈빛이었다. 다만 불량하던 아이들은 한결 순해져 있었다. 그들에게 돈을 뺏기고 고통스러워하던 시절이 실제로 있었나 싶었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들

인쇄소를 운영하는 친구가 동창회 상조기를 만들어왔다.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 이름과 졸업 기수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 때 흔들던 응원기와 닮아 있었다. 시간은 운동장에서 목청껏 응원하던 소년들을 부모님 상을 걱정하는 중년들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소년인 우리의 아이들도 언젠가 우리의 죽음을 걱정하는 나이가 돼서 저렇게 상조기를 만들 것이다. 처음 상을 치른 친구가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상에 갖고 가는 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마치 영화로 편집된 것처럼 불과 얼마 전 소년이었던 친구들이 중년의 친구들로 나타났다. 소년이었던 시절 우리에게 제일 궁금했던 것은 우리는 커서 도대체 무엇이 될까 하는 것이었는데, 다들 진짜 무엇이 됐다. 증권회사나 창투사, 은행, 보험 등 자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모임의 장소도 여의도였다.

우리가 사회에 진출하던 1980년 대 말에 한국은 본격적으로 금융 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했나 보다. 많은 친구들이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성실한 친구들은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몇몇 친구들은 회사를 나와서 창업 투자사를 운영하고도 있었다. 그래도 가장 성공한 친구는 학원 선생을 하고 있는 친구라고 입을 모았다. 강남의 스타 강사에 거대 학원의 지분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세월은 훌쩍 지나 바야흐로 교육 자본이 금융 자본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엇이 인생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가를 논의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출발과 지금까지의 결과를 같이 알고 있는 사이들이었다. 그 날 우리의 통계로는 공부는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공부는 어쩌면 삶의 자세였다. 고교 시절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를 하던 소년들은 그 일과 비슷한 일을 지금도 하고 있었다. 누구를 가르치거나, 최소한 앉아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교육청 장학사도 있었고, 대학 교수도 있었다. 학교 교사도 있었고, 거대한 조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금까지도 지키는 대기업 직원도 있었다.

성격은 또 하나의 요소였다. 성격도 얼굴처럼 쉽게 변하지 않았다. 성격이 다소 공격적이던 친구들 중에는 마케팅 쪽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동차나 보험을 파는 친구들도 있었고, 공격적으로 창투사를 운영하는 친구들도 그런 쪽이었다.

모든 것은 바뀌어 갈뿐

외모는 적어도 공적인 인생과는 큰 관련은 없었다. 세월은 미남도 추남도 비슷한 느낌의 중년으로 만들어 놓았다. 외모는 고교 시절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공부는 대학을 들어갈 때 가장 중요했다. 부모님의 재산은 결혼을 하던 무렵에 가장 중요했고, 성격은 30대 직장인으로 조직에서 일할 때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년의 삶의 근거로서 직업과 가족, 그리고 건강이 중요한 시기였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바뀌어갈 뿐이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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