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B보면서 운전?… 전방 주시율 50% 불과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내에 보급된 차량용 DMB는 607만대. 전체 등록 차량대수(약 1,700만대)의 3분의1을 넘을 만큼 '운전 중 DMB 시청'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체 교통사고 원인의 60% 이상이 '전방주시 태만'때문에, 그 상당부분이 DMB 시청 때문일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한 연구소의 실험 결과, DMB 시청시 전방주시율은 만취 운전자보다도 20% 이상 낮았다.
후진적인 교통안전 문화와 높은 교통사고율의 한 축에는 국내 운전자들이 있다. 운전자 스스로가 잘못된 습관과 의식을 고치지 않는 한 시스템과 인프라가 아무리 개선돼도 소용없다는 의미다.
도로 위 살인무기
휴대전화 통화가 운전자의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운전중 DMB 시청은 훨씬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실험 결과, 운전중 DMB 단말기 조작시 평균 6초가 소요되는데 이는 시속 70㎞ 주행시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채 118m를 달리는 상황과 같았다.
6㎞ 구간의 편도 2차선 도로를 정상상태에서 주행한 운전자의 전방주시율은 76.5%. 그러나 DMB시청자의 주시율은 50.3%에 불과하다. 이는 심지어 혈중알코올농도 0.05%(면허정지 기준)나 0.10%(면허취소 기준) 상태에서의 전방주시율(각각 76.0%ㆍ72.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DMB시청이 취중운전보다도 더 사고위험이 높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차량이 움직이면 내ㆍ외장형에 관계없이 DMB가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계돼 나오지만 국내운전자들은 운전 중 DMB 시청을 당연히 여길 정도로 경계심이 약하다. 지난해 10월 '운전중 DMB 시청 금지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음주운전의 위험성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대대적인 홍보와 계몽활동에도 불구, 전체 교통사고 중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비중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연속 증가 추세다. 2008년에는 사망자 100명중 16명이 음주사고로 숨졌을 정도.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이 선진국에 다가갈수록 늘어나는 '선진국형 교통사고'라며 보다 근본적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졸음운전의 위험성도 심각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1995년 사고분석 결과에 따르면, 음주 이외의 교통사고로 인한 치사율은 0.5%인데 비해 졸음운전은 3배 가까운 1.4%의 치사율을 보였다.특히 졸음운전은 한적한 지방 도로나 고속도로 상에서의 발생 확률이 높아 치명적 사고를 당했을 때 제때 구조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위험도 높다.
안전불감증이 사고 부른다
전체 교통사고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경상사고(전치 3주 이하의 부상사고)는 대부분 운전자가 기본적 안전의무조차 지키지 않아 일어난다. 전방주시, 차간거리 유지, 잦은 차로변경 자제 같은 운전의 ABC조차 무시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운전자에게 만연한 안전불감증 문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운전면허제도를 간소화한다며 면허취득 과정에서 실기시험과 안전교육을 줄였다. 당초 면허가 필요했던 50㏄ 이하 오토바이도 2008년7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무면허 운전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일부 보험사들은 각종 면책, 합의금 제공 등을 앞세워 '(사고를 내도) 보험이 다 책임져 준다'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이수범 교통공학과 교수는 "운전자들이 법규를 지키지 않는 데는 현실에 맞지 않는 신호와 속도제한 체계가 신뢰감을 잃은 데도 원인이 있다"며 "성인 운전자에 대한 단속 강화는 효과에 한계가 있고 금새 고치기도 어려운 만큼 어릴 때부터 기초질서 준수 의식을 철저히 교육하는 국가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교통위반자 사면후 사고 급증
교통사고는 사면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면허정지나 취소 처분을 받은 운전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 조치 이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교통사고 건수가 급증했다.
정부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매번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생계형 운전자를 돕는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교통사고는 크게 늘었다.
1995년 7월 595만명의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해 이뤄진 사상 처음이자 최대 규모의 사면 이후, 24만8,865건이던 교통사고 건수는 이듬해 26만5,052건으로 6.5%나 급증했다. 552만명을 사면한 98년 교통사고는 23만9,721건에서 이듬해 27만5,938건으로 무려 15.1% 폭증했다.
2002년 사면 역시 교통사고를 4% 이상 늘렸고 2005년 '사면 효과'는 잠시 주춤하는 듯 했으나 2008년 283만명 사면 이후 다시 '사고촉진'효과가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 건수(23만1,990건)는 1년 전(21만5,822건)보다 7.5%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냈던 사람이 또 사고를 낼 확률이 높다'는 교통사고의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손해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규위반이나 음주운전의 경우 흔히 평소 운전습관이나 의식에 의해 저질러 지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사면은 이런 잠재적'사고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을 다시 도로 위로 내보내는 셈이어서, '교통사고 줄이기'라는 정책목표와는 정면 배치된다는 비판도 높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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