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경제적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은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5월 개막하는 제63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극장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서 공개됐다. 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진 않았다. 관객들에게 무언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중학생 외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60대 여인 미자(윤정희)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진창으로 빠져 들어가는 과정을 좇는다. 미자는 난생 처음 시를 배워갈 즈음 외손자가 성추문에 연루되고, 자신은 알츠하이머병 판정을 받으며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생의 황혼기에 삶이 던지는 중대한 숙제에 맞닥뜨린 미자는 시를 통해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긴다.
219분의 상영시간 동안 영화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드라마를 구성하려 하진 않는다. 미자의 무너진 일상을 통해 그리고 시를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뒤늦게 닥쳐온 세파를 소녀 같은 심성으로 견뎌내는 윤정희의 연기가 가슴을 울리는 영화다. 이 감독은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미자와 윤정희씨가 겹쳐졌다. 촬영을 할 때도 미자와 윤씨를 서로 다른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칸영화제 진출에 대해 "영화제는 영화제일뿐 올림픽이 아니다"라며 "'시'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는 관객, 특히 한국 관객들이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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