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 환수에 대한 위헌여부를 놓고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격론이 벌어진 가운데 항소심 법원이 "위헌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도리어 친일재산 환수는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친일파 후손에게 일침을 가했다.
서울고법 민사21부(부장 김주현)는 국가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민병석의 후손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후손은 친일재산을 팔아 생긴 4억5,000여만원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앞서 국가는 친일파 땅을 사들인 제3자에게서 재산을 몰수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처음으로 친일재산을 매각한 후손을 상대로 직접 "땅 대신 돈으로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다.
민병석은 1910년 한일합병 체결에 적극 가담해 일제로부터 자작(子爵) 작위를 받고, 조선왕실을 관리하는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까지 올랐던 대표적 친일파다. 앞서 1심에서 민의 후손은 "이미 판 땅은 친일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돈으로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패소했다. 그러자 항소심에선 태도를 바꿔 "친일 재산 환수는 위헌"이라고 맞섰다.
이에 재판부는 '해방 60년이 지나 이뤄진 친일재산 환수가 소급입법 및 연좌제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구체적 판단을 내렸다. 이달 초 친일파 후손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헌재의 공개변론에서도 이 부분이 핵심 쟁점이 됐다. 우선 재판부는 소급입법이더라도 ▦국민이 예상할 수 있을 경우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을 경우 ▦기존 법을 변경해야 할 공익적 필요가 중대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한 것은 반역행위에 해당해 친일재산 환수를 통해 민족의 정기를 세울 공익적 필요성이 있고, 친일재산이 아무런 대가 없이 승계된 것으로 볼 때 재산 박탈로 인한 사익의 침해는 미미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친일재산 환수는 오히려 헌법이념과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좌제 금지 위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연좌제 금지는) 친족의 행위와 본인간 실질적으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친족이라는 사유만으로 불이익의 처우를 당할 때로 한정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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