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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김 총재의 눈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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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김 총재의 눈이 너무 크다

입력
2010.04.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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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음을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찰떡궁합'을 확인한 그 이벤트 말이다. 그날 이 대통령은 한은이 국가, 나아가 글로벌 관점에서 인식과 역할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은 독립성도 언급했지만 '국가경제 전체를 보는 안목'을 유달리 강조했다. G20 의장국의 글로벌 출구전략 공조와 조율 책임도 더해졌다.

찰떡궁합 중시, 견제ㆍ균형 훼손

김 총재는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고 취임사에 그대로 반영했다. "한은 독립은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고 전제했지만 방점은 20여 차례나 언급된 '위기'라는 표현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말에 찍혔다. 주어만 바꾸면 누가 한 말인지 가려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을 충실히 대변한 까닭에 한은이 아예 정부를 이끌기로 마음먹은 인상마저 풍겼다.

실제로 이후 그의 발언이나 행보는 통화신용정책을 훌쩍 뛰어넘어 국가경제 전체로 향해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책당국이 금리 인상을 반대하는 근거로 내세우던 '민간부문의 자생력 부족'은 어느새 김 총재의 단골메뉴가 됐다. 700조원을 넘은 가계부채의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엔, 그 부채의 대부분이 소득 상위 40% 계층에 귀속되는 데다 금융자산도 늘어나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란다. 부동산 과열도 국지적 현상이라고 가볍게 내쳤다.

얼마 전 일본 노무라증권이 "최근 한국의 경제환경이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며 버블 붕괴 충격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자 일부 측면만 과장되게 부각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같은 그의 모든 진단과 분석은 지금은 금리를 올릴 때가 아니라는 단 하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총재가 이렇게 방향을 잡으니 한은 사람들의 입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올 성장률 전망치를 4.6%에서 5.2%로 상향조정하고도 "회복세가 강하다는 뜻일 뿐, 4.6과 5.2의 차이는 없다"고 한다. 또 올해 성장은 재정보다 민간부문이 주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민간 자생력 회복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 이유가 더 웃긴다. "경제 전망상의 회복 시점과 총재가 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설명을 김 총재는 "정책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정책 입안자는 늘 강한 정책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경제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꾸준히 미세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가계부채든 부동산이든 변동성이 문제이지, 레벨(가격수준)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자랑하고 '일벌레'라는 별명까지 가진 학구파이니 그의 말을 대놓고 반박하기 쉽지 않다. 올 가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으로서 섣불리 출구전략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금리에 손대기 어려운 여러 여건은 이해한다 쳐도 금융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14개월째 2%로 동결된 금리가 과연 적정 수준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김 총재가 언급한 가계부채의 구조나 전경련 계열인 한국경제연구원까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제기한 것을 보면, 금융완화 기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출구 쪽으로 조금씩 이동할 여지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출구전략 G20공조 깨져 방향상실

이성태 전 총재가 가장 아쉬워한 것도 이 대목이지만 엊그제 국제통화기금(IMF) 한국담당자 역시 "한국의 성장세가 강해 금리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도 경기회복세를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김 총재에게는 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견제와 균형보다 대통령의 주문이 그의 머리를 지배한 탓일 게다. 하지만 워싱턴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결과로 그의 처지는 좀 우습게 됐다. 출구전략의 국제공조 원칙 폐기와 함께 각국이 신뢰할 만한 출구전략을 마련키로 했으니 말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귀 기울일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시장임이 새삼 입증된 셈이다.

이유식 논설의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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