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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국제학술회의/ 유럽중심주의 넘어 전 세계를 영역으로 한 역사 서술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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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국제학술회의/ 유럽중심주의 넘어 전 세계를 영역으로 한 역사 서술은 가능할까

입력
2010.04.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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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사'(Global Histor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 역사학이 유럽 중심의 강자들의 레토릭에 불과했다는 자기반성과 함께, 역사학이 민족ㆍ국가ㆍ문명 중심의 협애한 인식틀에 갇혀있었다는 문제의식이 결합된 결과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주최로 23, 24일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지구사에 관한 국내외 학자들의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전 세계를 영역으로 한 역사 서술이 가능할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지구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민족ㆍ국가 중심주의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등의 주제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지구사는 가능한가

지구사 서술을 위해서는 2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중심주의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회의의 핵심 주제였다. 빅뱅, 태양계 생성, 호모사피엔스의 출현부터 서술하는 '거대사'(Big History) 개념을 고안한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맥쿼리대 교수는 지구사 서술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역사를 보는 렌즈의 폭을 확대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1,000년 단위로만 넓혀도 중국, 이슬람세계 등 현재의 유럽만큼이나 헤게모니를 가졌던 제국들을 찾아낼 수 있으며 유럽중심주의는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제리 벤틀리 하와이대 교수도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한 역사 서술은 가능하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이외를 연구하는 방대한 지역사 연구가 이뤄졌으며, 유럽의 발전을 민족국가나 지역 단위가 아닌 대륙, 대양, 전지구적 맥락에서 분석한 연구가 축적됐다는 점에서 그는 탈유럽중심주의적 지구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임상우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가의 현실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지구사의 가능성을 회의했다. 임 교수는 "역사가는 어떤 유리한 고지에 서서 행렬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행렬 한가운데서 역사를 보는 존재"라며 "서구의 역사가이건 비서구의 역사가이건 자신의 관심 안에서 역사를 쓸 수밖에 없으며 '달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식'으로 자기 집단을 넘어선 총체적 역사 인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지구사를 쓸 수 있을까

역사를 보는 시각을 혁명적으로 확장한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의 방법이 지구사 서술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학술회의에서는 지구사 서술에서 전제되어야 할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김용우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심과 주변부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해 역사 서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령 유럽중심주의를 상징하는 헤겔은 프랑스혁명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노예혁명인 아이티혁명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 교수는 그러나 헤겔 연구자들이 이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 것을 비판하면서 "아이티혁명, 유럽의 계몽주의, 프랑스혁명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유와 평등 같은 보편적 이념을 확산했는지에 주목해야만 보편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심과 주변' '주체-타자'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역사 서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성숙성과 유아성, 정상과 비정상, 진보와 정체 등으로 서구와 비서구의 성격을 규정한 세계관은 해체돼야 한다"며 "세계질서를 다문화 다중심으로 긍정하는 기반에서 지구사 서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리프 딜릭 前 홍콩 중문대 교수

이번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아리프 딜릭(69) 전 홍콩 중문대 교수는 최근 횡행하는 전지구적 담론을 비판하고 근대성의 다양한 측면을 통찰해온 터키 출신 미국 역사학자. 국내에도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 등 저서가 번역돼 있다. 그에게서 '지구사' 담론이 부상한 역사적 맥락과 그 전망 등을 들어봤다.

_ 왜 탈유럽중심주의가 부각됐는가.

"1960년대 이후 서구 학계에 탈식민주의 연구바람이 불었다. 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대변되는 서구가 군사ㆍ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품게 됐다. 백인 주류문화의 지배를 받게 된 미국 원주민 연구 같은 것들이 이즈음 시작됐다."

_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어떤 점에서 유럽중심주의 담론은 서구학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가면'과 비슷하다. 이 이론을 주장한 서구학자들은 68세대들이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실패하자 문화투쟁에 나선 측면이 있다. 어쨌든 서구 헤게니가 전한 상태에서 서구 학자들의 탈유럽중심주의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_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지구사 서술은 가능한가.

"실제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그러나 역사 서술의 '방법론'으로서 지구사를 써보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_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내부와 외부와의 관계를 통찰하며 역사를 보는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제발전, 근대화를 얘기할 때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민족 개념에서만 접근한다. 그러나 외부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일본의 식민지배, 미국의 헤게모니 등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세계를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읽어내는 '월딩(worlding)'을 하자는 것이다."

_ 최근 관심사는.

"'근대'라는 개념을 '유럽'과 분리하려는 작업이다. 근대성이 왜 서양의 특권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품고 대안근대성(alternative mordenity)을 찾는 데 진력하고 있다. 가령 서구와 다른 경로를 밟으며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한 중국과 같은 경우가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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