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은 출가 이전 경험을 말하는 걸 금기로 여깁니다. 법정 스님 역시도 그랬지만, 제게만큼은 박재철이란 속명으로 살았던 22년 간의 삶에 대해 곧잘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상세히 메모해뒀던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가 정찬주(57)씨가 지난달 입적한 법정 스님의 전기소설 <소설 무소유> (열림원 발행)를 내고 26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정씨는 1984년부터 샘터사 편집자로 일하며 법정 스님의 산문집 10권을 펴냈고, 1993년에는 스님으로부터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의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고 재가 제자가 되는 등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소설>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랐고 전남대 상대에 진학했던 법정 스님이 학교를 중퇴하고 스님이 되기 위해 전남 해남군의 고향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님의 성장기와 학창 시절의 일화들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정씨는 "스님이 전남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서 홀로 기거하며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고 명상하는 모습을 상상해 서술한 부분을 빼면, 소설 속 모든 일화는 실제 스님의 말씀과 글에 기반을 뒀다"고 밝혔다.
소설에는 법정 스님의 인간적 면모가 진솔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스님은 처음 탁발하러 나갔던 농가에서 머리를 길게 땋은 처녀를 보고 속가의 여동생을 떠올리며 도망치듯 발걸음을 돌린다. 정씨는 당시 스님의 심정을 이렇게 헤아린다. "한번도 여동생에게 살갑게 정을 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106쪽)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스님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어디선가 낳은 여동생을 집에 들였다고 한다. 정씨는 "스님이 영화 '서편제'를 보며 내내 우셨던 일, 제 두 딸의 선물을 손수 챙기셨던 일 등을 생각하면 스님 마음에는 늘 여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한 회한이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님은 입적하기 얼마 전 입원해 있던 여동생을 만났다"고 정씨는 전했다. 뭔가 말을 꺼내려던 여동생에게 스님은 "네가 할 얘기 잘 안다"며 "꿋꿋하게 살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불일암 기거 시절(1975~92년) 손수 굴참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에 스님은 '빠삐용 의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화 '빠삐용'에서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따지는 빠삐용에게 간수가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대꾸하는 장면에서 착안했다는 것.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거야."(204쪽)
정씨의 말에 따르면 법정 스님은 젊은 스님들이 말씀을 청하려 불일함에 찾아오면 큼직한 알사탕을 물리고 빠삐용 의자에 앉혔다고 한다. 사탕을 우물거리느라 말을 못하는 그들에게 스님은 암자 건너편 조계산을 가리키며 "산자락이나 쳐다보고 가거라" 하셨다는 것. 정씨는 이 일화를 스님의 '절판 유언'과 연결시키면서 "스님의 책을 징검다리 삼아 지혜를 얻을 생각은 안하고 책만 바라보는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사자후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28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에 참석, 스님의 정신을 되새겨보려 한다"며 말을 맺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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