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29일 만에 박성균(20ㆍ사진) 중사가 싸늘한 시신이 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로 귀환했다. 46명의 희생자 중 40번째 말 없는 함대 복귀. 박 하사를 기다린 것은 가슴을 쥐어 짜며 생환을 기다린 가족들의 눈물과 추서진급된 중사 계급장이었다.
박 중사는 24일 오후 4시55분께 군 헬기편으로 해군 2함대사령부로 옮겨져 안치됐다. 침몰 뒤 약 한 달이 지나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어도 막상 시신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박 중사 어머니는 "내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 성균아"라고 목놓아 오열했지만 아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아들의 귀환을 지켜보며 눈물을 떨궜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나온 고 서대호 중사 어머니도 소리 내 함께 울었다.
박 중사는 1989년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대학 1학년이던 지난해 9월11일 해군 부사관 224기 보수하사로 임관했고, 천안함에는 올해 1월12일부터 승선했다. 새내기 부사관이지만 함정 구석구석에서 힘든 기색 없이 웃는 얼굴로 직무에 임한 승조원이었다. 침몰 때도 자이로실에서 항해보조장비를 점검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들은 당직이 끝나도 전문 서적을 공부할 정도로 자기계발에 힘썼고,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며 멀미약 없이 버티던 소신 있는 해군으로 기억한다.
25일 합동장례식이 시작된 2함대 내 빈소에서 박 중사 유족들은 그가 당초 추정한 함미(艦尾)가 아닌 함수(艦首)에서 발견됐다는 점 때문에 군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함수는 침몰까지 다소의 시간이 있었는데 승조원들이 그를 구출하지 못한 채 탈출한 셈이기 때문이다. 군도 사고 직후 브리핑에서 "승조원들이 모두 수색한 뒤 탈출했다"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박 중사 어머니는 "이런다고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승조원들의 근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함수 쪽 장병들이 왜 찾지 못했을까 너무 안타깝고 서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택=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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