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천안함 46 용사, 그대들은 우리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천안함 희생장병들에 대한 공식 장례식 일정이 시작된 25일,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 실내체육관 천장에는 장병들의 이름과 함께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5개의 분향로 뒤 일렬로 늘어 세워진 영정 사진 속에서 희생장병 46명은 깔끔한 제복 차림으로 31일 만에 이 세상 모든 인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고 이창기 준위부터 고 장철희 일병까지 46명의 이름은 한 단계씩 올라간 계급으로 씌어졌다.
메마르지 않는 눈물샘
이미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희생장병 가족들의 눈물샘은 영정 속 장병들의 환한 얼굴 앞에서 속절없이 터지고 말았다. 끝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고 이창기 준위의 어머니는 "우리 창기 찾아야 돼. 왜 우리 애는 못 찾아 주는 거야"고 울부짖으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고 토해내는 부모의 애끊는 통곡소리는 차라리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분향을 마친 고 이상준 중사의 아버지는 "상준아 이놈아! 니 애비는 어쩌라고 가냐, 나도 데려가라 이놈아"라고 오열하다 끝내 자리에 주저앉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고 강태민 상병 아버지 영식씨도 "처음에는 생존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감만 높여 놓고서는 이게 뭐냐"고 가슴을 쳤다.
"평소 속도 안 썩이고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하며 부모에게 손 한번 벌린 적이 없던 아이였다"는 그는 "입대 후 군복 차림으로 찍은 증명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애통해 했다. 가족들은 강 상병이 평소 즐기던 게임기와 MP3를 유품으로 화장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아 군복과 내복 등 의류로 대신하기로 했다.
장례식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고 박경수 상사의 딸 가영이는 취재진들에게 "나한테 허락 안 받고 인터뷰하면 안 돼요"라며 장난을 걸었다. 아비의 죽음을 깨닫지 못한 손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 상사의 아버지 종규씨는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육신은 한 줌의 재로
전날 문규석 원사 등 6명의 희생장병에 이어 이날 수원과 충남 연기ㆍ홍성에서 모두 11명의 천안함 희생장병들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평택 해군2함대를 출발한 운구차량은 낮 12시쯤 수원 연화장, 연기 은하수공원, 홍성 추모공원에 각각 도착했다. 희생장병의 관이 내려지자 이를 지켜보던 유족들은 관을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고 이상민 하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실신, 병원에 응급 후송됐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야 한다"며 팔에 링거를 꽂고 돌아와 끝까지 아들 곁을 지켰다.
홍성 추모공원에서는 고 김선호 병장의 영정 앞에 평소 즐겨 마셨던 바나나 향 우유가 놓여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희생장병 중 막내인 고 장철희 일병의 어머니는 아직 어린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없다는 듯 운구차량 앞에 주저앉아 10분 동안 아들의 이름만 목놓아 불렀다. 장병들의 시신은 화장로에 들어간 지 2시간여 만에 한 줌 재가 돼 군이 마련한 유골함에 담겨 다시 해군2함대 사령부로 옮겨져 임시 유해 보관소에 안치됐다.
해군 의장대와 동료들은 유골이 된 희생장병들의 봉안함이 운구차량으로 옮겨지는 길목에 한 줄로 도열해 우렁찬 목소리로 '마지막 경례'를 올렸다. 또 은하수공원은 같은 시간대 예약을 받지 않는 등 전 직원이 유족들을 배려했다.
애통한 수색 중단
이날 공식 장례절차는 "인양된 함수(艦首) 내부 수색을 중단해 달라"는 침몰사건 피해가족모임 '천안함 전사자 가족 협의회'(천전협)의 요청에 따라 시작됐다. 나재봉 천전협 장례위원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가족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오후 8시부로 함수 내부 수색을 종료하고 25일 오후 2시 희생자에 대한 장례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함수 내부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고 이창기 준위 등 미귀환 장병 6명은 침몰 당시 산화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이들의 장례는 시신 대신 각종 유품과 손톱 머리카락 등 입대 시 제출한 신체 일부로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이준희ㆍ한동훈ㆍ연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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