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 님들은 밝은 표정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맑았다. 국화 2만5,000송이에 둘러싸여 왼쪽부터 계급 순으로 늘어선 마흔여섯 용사들은 모처럼 정복을 갖춰 입고 봄나들이에 나와 기념촬영을 하듯 평온했다.
시민들은 엄숙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 데이트 나온 연인, 일부러 찾아온 장삼이사 등 각기 다른 사연만큼 옷 색깔도 다양했지만 용사들 앞에서는 질서 있게 옷깃을 여미었다. '잔인한 달' 4월의 마지막 휴일인 25일은 사람들 가슴 속에 아프게 남았다.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힌 분향소 위의 대형 포스터 글귀처럼.
이날 오후 2시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엔 자정까지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40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경건한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가로 22m, 세로 8m, 높이 6.7m의 제단 앞에서 저마다 헌화하고 묵념을 하거나 절을 한 뒤에도 못다 핀 젊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정완숙(54)씨는 "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분향을 하고 가는 게 도리"라고 했고,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생 봉준한(13)군은 "나라를 위해 돌아가셨으니까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관광차 캐나다에서 온 미미(32)씨는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다 숨진 게 너무 슬프다"며 "정말 뜻 깊은 기억을 담고 간다"고 말했다.
근처 추모의 벽에도 넋들에게 전하는 무명의 노랑 연두 하늘 분홍색 메모가 가득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동생이며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편히 쉬세요' '군인 아저씨들을 영원이 잊지 않을게요' 등.
유가족들이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대표 합동분향소에 있는 터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선 해군 12명과 서울시 직원 7명이 상주(喪主)로 나서 조문객을 맞았다.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의 근조 화환이 도착한 데 이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 국회의원들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이날 서울광장의 조문인원만 3,000여명에 달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16개 광역시ㆍ도와 각 시ㆍ군엔 시민 합동분향소 34곳이 마련됐다. 경기도가 수원역광장과 평택역광장 등 8곳에 설치한 분향소엔 해군2함대 영관급 장교 3명이 상주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도청 대강당과 경남도청 광장, 광주시청 시민홀, 제주도체육회관 등 지방자치단체별로 설치한 합동분향소에도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들 시민 합동분향소는 영결식이 열리는 29일까지 5일간 매일 오전 6시부터 자정(단 29일은 오후 6시)까지 시민 조문객을 맞는다.
용사들의 모교 등 자발적으로 꾸민 분향소도 많았다. 고 정종율 상사와 강현구 하사, 조지훈 상병이 다녔던 인하공업전문대학, 고 심영빈 중사와 실종된 장진선 중사의 모교인 동해 광희고교, 고 방일민 중사가 다녔던 김포대학 등에 마련된 분향소엔 이들의 동문과 후배들이 헌화했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박경수 상사의 모교인 수원 삼일공고는 26일부터 조문객을 받는다.
강원 육군 제1야전사령부와 경기 김포 해병대 청룡부대, 군산 제38전투비행전대 등 군(軍) 분향소 설치도 잇따랐다.
사이버공간도 애도의 물결로 넘실댔다. 이날 해군(navy.mil.kr)과 육군(army.mil.kr)이 홈페이지에 마련한 사이버분향소엔 각각 수천 명의 네티즌이 추모 글을 남겼다. 포털 사이트와 46용사들의 미니홈피 등에도 이들의 명복을 비는 글이 종일 올라왔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이수민ㆍ양철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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