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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철학·무용… 신체를 함께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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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철학·무용… 신체를 함께 탐구하다

입력
2010.04.2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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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세 형상과 초상화'가 무대 벽면에 비치자 철학자가 무대 복판으로 나와 강의를 시작한다. "이 그림에서 뼈는 살이 서 있도록 해주는 조화로운 틀이라기보다는 살에 침입한 불쾌한 침입자, 살을 가르고 들어온 칼과도 같습니다."

이어 세 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춤을 춘다. 몸을 곧추세우는 기둥처럼 여겨졌던 척추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그들은 흐느적거리는 상체를 발목만으로 겨우 지탱하다가 결국 무너진다.

바닥에 쓰러진 무용수에게만 조명이 비춰진 어두운 무대를 향해 시인이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화가는 그림 속 물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뼈로 찾아오는 저녁을 보았다/ 사람들은 … 그가 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상한 뼈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김경주 시 '굴_kafka'에서)

22일 오후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는 철학 강의와 즉흥 춤, 시 낭송이 공존하는 독특한 퓨전 공연 '신체연구'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이날 무대 연출 방식을 두고 의견을 조율하면서 4명의 무용수와 함께 이 전위적인 공연을 완성시켜 나간 이들은 서동욱(41) 서강대 철학과 교수, 이나현(37) 현유빈댄스 예술감독, 시인 김경주(34) 김지녀(32)씨. 철학자, 안무가와 시인 2명, 좀체 한자리에 모일 일이 없어보이는 이들은 다원적 국제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초청작인 이 공연을 23, 24일 무대에 올렸다.

이번 공연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무용수로 활약해온 이나현씨가 '페스티벌 봄'으로부터 공연 의뢰를 받고 서동욱 교수에게 공동 작업을 제의해 이뤄졌다. 5년 전 이씨의 즉흥춤에 서 교수가 현장해설을 하는 방식으로 함께 무대에 섰던 두 사람은 '기존의 관념과 해석에 기대지 않은 사람의 몸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목표로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서 교수는 "신체를 바라보는 온갖 이론, 관습, 선입견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예외적인 사유인 철학, 예외적 신체 사용 방식인 무용, 직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철학자 스피노자의 이론에 따라 신체를 뼈, 피부, 체액으로 나누고 공연도 거기 맞춰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뼈와 관련해선 척추가 인체의 기둥 역할을 한다는 관념을 버리고, 몸이란 언제든 척추로부터 흘러내릴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라고 봤다. 몸을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재해석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동원한 것도 이 때문. 그렇다면 신체는 피부라는 가죽으로 이뤄진 자루에 불과하고, 이 자루를 생동하게 하는 것은 호흡이다. 마치 송풍기에 주입하는 바람에 따라 흐느적대는 튜브 인형 같은 인간들은 눈, 코, 입, 성기 등 피부에 나있는 구멍을 통해 체액을 교환하면서 상대방과 소통한다.

신체에 대한 이같은 즉물적 이해를 철학자는 강의로, 무용수는 춤으로, 시인은 시로 표현했다. 이들은 서로 꼭 필요한 의견만 주고 받으며 각자의 작업에 매진하다가 리허설 때 비로소 결과물을 맞춰보는 방식을 택했다. 김경주 시인은 "각자의 작업을 잘 조율해 관객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서로 다른 영역이 겹쳐졌을 때의 기묘한 교집합이 주는 낯선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지녀 시인은 "무용수들을 보면서 몸이 저렇게 솔직하게 감각적일 수 있구나, 시도 결국 그걸 지향해야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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