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G 윌슨 지음·조우석 옮김/세종서적 발행·254쪽·1만2,000원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대에 어디를 가나 보는 것은 가면을 쓴 모습이다. 행복한 얼굴이라는 분칠… 탈출을 감행한 날 욕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다소 슬프고 음울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행복 나라에서 탈출한 결과 자연스러움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 아름다움이 스민 우리의 얼굴임을 깨닫는다."(121쪽)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묻는 책은 많다.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친절한 안내서도 넘친다. 육탄전을 치르듯 행복을 갈구하지만 좀체 그것을 얻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 터. 이 '행복 쟁탈전'의 패잔병들은 스스로를 우울, 다른 말로 하면 멜랑콜리(melancholy)의 포로로 여기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 책_원 제목이 'Against Happiness'다_은 이렇게 선언한다. "멜랑콜리야말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멘토다!"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인 저자는 문학과 심리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영문학자다. 그가 보기에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잘 짜인 행복 방정식에 맞춰 항상 방긋거리며 만족의 통념에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기성품처럼 표준화된 이런 행복을 욕망하는 것은 진솔한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에 깃든 세상과 우주의 두 가지 상반된 요소_고통 혹은 체념이라는 극, 짜릿한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다른 극_에 한쪽 눈을 감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히려 저자는 멜랑콜리가 삶의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적 원천, 모든 창조와 발명을 가능케 한 귀중한 영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쓴 배경을 "행복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우울증 따위는 대패로 밀어버리듯 하며, 그 결과 인류의 창조적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멜랑콜리마저도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된" 현실이라고 밝힌다. 다소 격정적인 그의 토로를 그대로 옮겨보자.
"멜랑콜리라는 것은 우리 영혼의 떨림 혹은 흔들림에 다름아닌데, 그것이 완전히 멸종된다면 인간이 추구해온 장대한 소망이라는 탑은 어느 날 갑자기 휘청거리며 무너지지 않을까?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과 아름다움이 함께 교차하는 인간 삶의 교향곡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리지 않을까? … 이런 움직임은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학적 위기, 핵무기 확산 같은 디스토피아적 상황 못지않게 위험하다."(12쪽)
저자는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했던 천재들의 사연을 논거로 동원한다. 예컨대 존 레넌. 그는 전쟁,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며 성장했다. 상심과 번민에 지친 영혼이었기에, 그의 음악은 깊은 울림을 지닐 수 있었다는 얘기다. <모비딕> 의 작가 허먼 멜빌, 낭만피 시인 존 키츠, 심리학자 카를 융 등도 공통적으로 '인공적인 행복'에 의문을 제기하고 고독과 은둔을 택했다. 저자는 상실감과 슬픔의 정서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숨쉬는 삶의 무대라고 거듭해 말한다. 이 책은 그 무대, 곧 창조적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의 초대인 셈이다. 모비딕>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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