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간인 <김예슬 선언-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는 손바닥만한 작고 얇은 책이다. 재생지를 쓴 이 책은 겉치레가 없다. 소박하지만 읽기 좋고 보기 좋게 만들었다. 서지 사항이 인쇄된 마지막 장에 출판사가 책 만드는 철학과 원칙을 밝혔는데, 요지는 이렇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제본은 책의 정신과 내용만큼이나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잘 펴지고 읽기 편한 방식을 채택했다." 김예슬>
굳이 선언하듯 박아놓은 문구가 다소 이물스럽기는 해도, 인상적이었다. 내용과 형식이 따로 노는 책을 워낙 많이 본 탓인지 더 눈에 들어왔다. 소박한 밥상을 강조하면서 멋을 잔뜩 부려 호화판으로 만든 사찰요리책,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을 전하면서 지면을 마구 낭비하는 화려한 편집으로 유혹하는 책, 환경 파괴에 따른 재앙을 경고하면서 형광빛 도는 빠닥빠닥한 종이를 쓴 책…. 이런 책들을 보면 어리둥절하다. 내용과 형식이 딴판인 것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처럼 믿음이 안 간다.
모든 책에 대해 종이와 편집, 제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에서 내용에 걸맞은 형식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자칫 그 엄격함이 무거운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용 따로 형식 따로'가 지나쳐 자기분열을 겪는 책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직하지 않다. 책의 만듦새는 책의 자기 표현이자 선언이기 때문이다. 제목의 글꼴 하나도 책의 성격과 특징을 웅변할 수 있다. 북디자이너가 표지와 편집 디자인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만듦새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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