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제렌트 등 지음ㆍ심희섭 옮김/열대림 발행ㆍ248쪽ㆍ1만3,800원
양 한 마리를 포름알데히드가 든 수족관에 넣고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잘나가는 작가인 스승의 연줄로 단체전에 참여한다. 말도 안되는 작품에 격분한 다혈질 관람자가 그것을 훼손한다.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화랑과 연결되는 순간 수족관의 양은 '예술'이라는 '합의'를 확보한다. 작품이 유명 수집가에게 팔리고 공공 컬렉션에 포함되면 논문 주제를 찾아 헤매던 미술사 전공 학생들이 펜을 든다.
<미술관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가 소개하는 '수족관 속의 양이 예술이 되는 과정'은 이렇게 현대미술의 생리를 잔뜩 비꼰다. 독일의 미술평론가와 아트디렉터가 함께 쓴 이 책은 미술 안내서다. 그런데 미술을 알려준다면서 대놓고 잘근잘근 씹어댄다. 미술관에 가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현대미술은 왜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지, 미술판의 이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 하나하나에 냉소가 가득하다. 어찌나 뾰족하게 꼬집는지 책을 읽는 내내 큭큭 웃음이 나온다. 미술관에>
전시장에 갈 때는 "'정신의 극치를 눈 앞 현실로 불러낸 것 같다'는 식의 미사여구 몇 개만 기억해놓으면 만사 오케이"이며,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소곤대는 이유는 주위에 방해가 될까봐서가 아니라 엉뚱한 말로 창피를 당할까봐서이다. 전시 오프닝은 미술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시선 쟁탈전이 벌어지는 곳인데, 적당히 차려입고 퍼포먼스 예술가를 자처하면 노숙자도 충분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비디오아트는 "전시장에서 잠깐 눈붙일 컴컴한 방을 찾는 사람에게 제격"이며, 개념미술은 "고도의 자기 포장 전략을 펼치는 약아빠진 미술 조류"다.
화랑주들은 작가를 다듬어 돈벌이가 되는 상품으로 만드는 사람인데, 돈이 많거나 결혼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 경매 현장에서는 온갖 편법과 속임수가 난무하며, 공공미술관은 비용의 압박으로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대여해 전시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가격을 올려주는 '순간 온수기'로 전락했다.
이렇게 내내 미술판을 조롱하던 책은 마지막에 가서야 선심쓰듯 말한다. 그래도 우리 시대 미술을 볼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지금 아니면 언제 보겠냐고. 결국 이 책은 미술이 어렵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다가가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 과정에서 동원된 풍부한 사례를 통해 마르셀 뒤샹의 '샘'부터, 데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 네오 라우흐 같은 요즘의 스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흐름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것도 책의 장점이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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