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50돌을 맞은 서강대가 캠퍼스를 하나의 극장으로 재창조한다. 서구 중세의 연극 유산을 디딤대로, 우리의 연극적 가능성을 가늠하는 자리다. 유럽 연극의 원형인 '순환극'과 '도덕극'을 동시 재현하는 것은 아시아 최초의 시도다.
서강대 개교50주년기념사업회는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성서적 보편성에 기반해 기존 장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공연 형식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천주교 대학이라는 무형의 가치와 서강연극회가 배출한 연극ㆍ영화계의 인적 자산을 집결, 미디어 아트에 길들여져가는 이 시대에 띄우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순환극 '미라클'은 동문, 교수, 학생, 신부, 신도에 마포구합창단 등 120명의 합창단까지 350여명이 광대 역할을 하고, 원근 각처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자연스레 관객이 되는 서구 중세의 민중 거리극이다. 극장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도덕극 '에브리맨'과 함께 중세 축제 양식과 극장의 융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 국내 축제의 앞마당 대목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맡아온 거리극이 극장과 손을 잡는 실험의 순간이기도 하다.
목마, 저글링 등 볼거리들이 어우러지는 거리극은, 스타가 사라지는 평등의 한마당이다. 동문 배우, 교수, 신부 등이 '예수들' 즉 여러 예수를 연기하면 12제자 역의 배우들은 연기와 홍보를 겸한다. 서양판 각설이 마당이라 할 만한 거리극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대학 공동체의 비영리성이 한몫했다. 각계에서 활동 중인 이 학교 출신의 명사들을 카메오로 교섭한다. 또한 새로운 공연 양식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중세 1,000년을 지속했던 유럽인들의 생활과 성정이 극에 융해돼 고스란히 펼쳐진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상호 참여의 극장 공간으로 광장을 부활시켜, 연극의 본래적 기능을 확인하자는 의도이다.
영상세대를 위한 배려도 있다. 말구유나 노아의 방주 등 성서의 상징들을 학교 건물마다 대형 오브제를 설치하거나 벽면에 영상을 투영해 구현한다. 관객들은 캠퍼스 안에서 이동해가며 무대를 즐길 수 있다. 주최측은 "1960년대에 뮤지컬을 소개했던 서강대는 이번에는 국내 초유의 중세 연극을 통해 영적 환희를 제공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에브리맨'의 연출자 최용훈씨는 "우리 시대의 타락상을 상징하는 클럽 '에브리맨'에서 벌어지는 온갖 양태를 1시간 남짓 미디어 아트로 펼칠 계획"이라며 "프로 무대라면 불가능했을 이번 실험을 통해 연극이 본디 사회적 실천의 도구였음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관람료도, 출연료도 없다. 출연자들이 돈을 내고 참가했던 중세극의 관행을 되살린 것이다. 3억원대의 제작비를 제공한 서강대측은 "가톨릭 공동체와 학교가 중세의 길드로 거듭난 셈"이라고 말하고 향후 연례화의 뜻도 강하게 내비쳤다. '에브리맨'은 5월 6~15일 메리홀대극장, '미라클'은 15일 청년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02)705-7938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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