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정부 계산 따라 '찻잔 속 태풍' 될수도
"greed is good"(탐욕은 좋은 것)
1987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월스트리트> 의 주인공 고든 게코의 유명한 대사. 월스트리트>
위의 한 마디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월가의 생리를 집약적으로 나타낸 말로 많이 인용된다.
월가의 탐욕이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개혁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 16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월가의 최강자로 불리는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고소하였다. SEC의 발표내용은 이렇다.
주택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06년 말 헤지펀드인 폴슨사(Paulson & Co.)는 모기지증권을 담보로 하는 합성증권(CDO)의 발행을 골드만삭스에 의뢰하였다. 골드만삭스는 신용평가기관인 ACA사를 통해 CDO에 포함될 모기지증권 90개를 선정하여 20억달러를 발행했으며, 이를 독일 금융기관인 IKB 등에 팔았다. 이 CDO는 주택가격이 하락할 경우 발행을 의뢰한 폴슨사가 이익을, 증권매입자가 손해를 보고 반대로 상승할 경우 폴슨사가 손해를, 증권매입자가 이익을 보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주택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폴슨사는 10억달러의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문제는 CDO에 포함될 모기지증권 선정과정에 폴슨사가 개입을 하였고, 폴슨사는 가장 부도위험이 높은 증권을 고의적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폴슨사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채권발행을 주관하였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SEC의 제소에 충격을 받았으나, 곧 SEC의 제소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고 손실 가능성도 경고했다는 것. 자기들도 9,000만달러의 손실을 봤고 폴슨사의 개입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 상거래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례적으로 골드만삭스가 SEC를 공개적으로 성토하고 나선 것은 SEC의 기소내용이 사실로 굳어질 경우 금융업에서 생명과 같은 신뢰에 흠집이 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고소사건은 월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일부에서는 현안인 금융개혁법안의 의회통과를 촉구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보기도 한다. 금융개혁법안에는 파생상품거래 제한, 금융기관의 대형화 억제 등 월가를 규제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 동안 월가의 불법행위 적발에 성과를 내지 못한 SEC가 이번 사건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법률전문가들은 SEC가 제시한 내용만으로 볼 때, 골드만삭스의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폴슨사의 개입이 투자자들에게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정보였는지, 이러한 정보를 알았다고 가정할 때 투자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인지를 증명하기가 어렵다. 한쪽은 이익,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는 금융거래의 특성을 무시한 채 사후에 나타난 결과만 두고 사기혐의로 몰아가는 데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SEC 내에서도 제소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SEC가 추가로 어떤 증거를 내놓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수 있기는 하다.
현재 감독당국은 골드만삭스 뿐 아니라 다른 투자은행에도 비슷한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패소할 경우 유사한 소송이 봇물을 이룰 수 있어 월가가 제2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감독당국과 금융회사와의 고소사건을 보면 서로가 명분을 찾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던 전례가 많다. 골드만삭스도 타협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고문을 지낸 그레고리 크레이그를 변호사로 영입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 로버트 루빈 등도 친정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SEC와 골드만삭스간의 타협으로 끝나는 찻잔 속의 미풍이 될지, 연일 월가에 칼날을 세우고 있는 감독당국이 몰고 올 허리케인의 전조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박창현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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