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의 13세 소년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등반에 성공하면 에베레스트를 밟은 세계 최연소 산악가가 된다는 내용과 환하게 웃던 소년의 얼굴사진이 유난히 해맑게 느껴졌다.
어린 소년의 등반기사를 읽은 김에 모처럼 북한산 산행에 올랐다. 4월 중순까지 꽃샘추위가 극성이더니 어느새 주변이 꽃 천지다.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펴서 봄을 이루게 된다"고 하신 법정스님의 말도 문득 떠올랐다.
대기업의 CEO자리에 있다 보면 업무상 골프치는 일이 많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산행을 즐긴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이라는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산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니 몸이 절로 건강해지고, 또 조용히 산을 오르면서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며 조급했던 마음의 여유도 다시 찾을 수 있으니, 산행은 이래저래 나에겐 적잖은 보람을 가져다 준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 임직원들과 산을 찾는다. 산에 오르면서 일상 이야기를 듣고, 회사 이야기도 나눈다. 회사 안에서는 자칫 경직될 수 있는 관계도 자연을 벗 삼아 땀을 흘리다 보면 서로 마음이 열리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데, 아마도 여기에 산행의 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산 정상을 향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문득 CEO를 처음 맡은 2008년말이 떠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건설사들은 부동산시장 침체와 미분양에 신음했다. 우리회사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회사는 위기를 딛고 당당하게 제 자리를 되찾았지만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밤낮없이 뛰어준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살이나 회사경영에는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반드시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고난과 위기의 힘든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얻게 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숨차게 힘들여 올라온 산 정상에서 마시는 공기가 꿀처럼 달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겨울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매화꽃의 향기가 코에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은 성과야 말로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요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심지어 소중한 목숨까지 내버리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너무 힘든 때가 찾아오면 그 자리에서 그냥 조금 쉬어가면 어떨까. 그리고 기운을 회복해 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한발한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힘들 때 한 숨 쉬어가는 지혜. 이것은 찬란한 봄날, 오랜만에 나선 북한산 산행에서 내가 얻은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이다.
허명수 GS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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