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荊州)에 있는 유표(劉表)에게 의지하고 있던 유비(劉備)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만나 대업을 이루기 위한 대책을 물었다. 공명은 당시의 정세를 자세히 분석한 후 유비에게 먼저 조조 손권(孫權)과 더불어 위ㆍ촉ㆍ오(魏ㆍ蜀ㆍ吳)라는 삼국 정립(鼎立)의 가설을 제시했다.
대외적으로는 신생국인 촉은 오와 동맹을 맺어 강국인 위에 대응함으로써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대내적으로 백성을 잘 다스리고 군비를 축척해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국가 간의 첨단기술 경쟁에서도 이러한 공명의 지혜는 유효하다. 스마트그리드, 전기자동차, 원전, 3DTV, LED 응용 등의 경우에서 다양한 단위 시스템들이 서로 연동되는 종합시스템 기술 확보를 둘러싸고 국가간에 일고 있는 치열한 글로벌 표준경쟁은 이미 전장(戰場)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한 예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기술의 경우 통신 네트워크, 전력계통, 스마트미터, 전기자동차 충전시스템 등 다양한 단말기, 정보 보안시스템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상호 연동되기 위해서는 표준의 역할이 중요한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스스로 종합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상호 협력을 통해 시스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국제적인 협력과 견제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 실력을 비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립 표준기술원(NIST)은 이미 2007년 '코디네이터'제도를 도입하여 로드맵을 수립하는 한편 각 기관에 흩어져 있는 표준을 통합ㆍ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일본과 6,000만 달러 이상을 상호 투자하며 새로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유럽은 모든 회원국을 하나의 스마트그리드로 묶을 수 있도록 유럽표준을 통해 협력체계를 굳혀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규모의 예산을 스마트그리드에 투자하여 GE, IBM등 서구의 유수 기업들을 속속 중국대륙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그리드 사업단을 출범시키고, 미국 일리노이 주와의 협력을 개시하는 등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 전반을 조망하면서 지휘하는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관련 협회, 기관 및 국내 기업들은 제각기 유관 분야에 국한하여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어 국가 차원의 효율성 확보는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외적 협력과 견제가 막 시작되었으나 대내적 '내실 쌓기'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표준 코디네이터팀'제도를 운영해 국가 차원의 시스템적인 지휘체계를 확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누락된 기술표준을 신속히 국가표준으로 제정하고, 이를 국제표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기존 기술표준과의 연계성 확보 및 핵심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마트그리드, 전기자동차, 3D TV 등 우선 시급한 4~5개 분야의 국책 과제를 4월 중에 선정해 기술연구회로 출범시키고 하반기에는 추가로 대상을 발굴해 본격적으로 표준 코디네이터 제도를 운영할 예정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대외적 협력과 견제, 대내적 역량 비축을 꾸준히 추진한다면 약소국으로 출발한 촉이 삼국의 한 축을 이뤘듯 우리도 충분한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 믿는다.
허경 지경부 기술표준원 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