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제조 업체와 통신사가 전쟁에 돌입할 태세다. KT와 삼성전자의 장외 설전이 감정싸움으로까지 치 닫고 있는 것. 명목상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 문제지만, 사실상 논쟁의 중심엔 애플 아이폰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무역협회의 최고경영자(CEO) 조찬모임에서 "'쇼옴니아'는 홍길동이어서 아버지(삼성전자)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쇼옴니아는 3세대(3G) 망과 무선랜(와이파이),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데도, 삼성전자는 ('쇼옴니아'에 대해) 작게 광고했다"며 "대신 SK텔레콤과 연합해서 (SK텔레콤에서 출시되는) '옴니아2'만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이폰을 출시한 KT에 대해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쇼옴니아'에 대한 광고 비중을 줄여,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쇼옴니아'(홍길동)도 삼성전자(아버지)의 자식이나, 아버지의 지나친 홀대로 설움을 받았던 홍길동과 같은 신세라는 의미이다. 통신업체 CEO가 휴대폰 제조 업체를 직접 겨냥, 공개 석상에서 비판을 제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회장은 나아가 "비즈니스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며 "(삼성전자가) 감정을 갖고 (영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오히려 '적반하장'이란 입장이다. KT가 아이폰을 도입한 이후, 마케팅 비용 등의 각종 명목으로 보조금을 걷어 아이폰에만 집중 투입, 삼성전자의 피해가 더 커졌다는 것.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KT가 제조업체에게 보조금을 요구한 뒤 이를 아이폰에 쏟아 붓는 바람에 국내 제조업체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걷은 돈이 결국 외국 업체인 애플에게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도 지난해말 이 회장에게 "(아이폰 판매와 관련) 상황은 알지만 최소한 공정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휴대폰 업체들은 특히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제한한 '마케팅비 20% 제한' 요구에 따른 여파가 휴대폰 업체에게 되돌아오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동통신업체들이 이달부터 단말기별로 10% 내외 수준으로 제공되던 제조사 부담의 정책 장려금(보조금)을 10~2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할 것과 휴대폰 공급 가격을 5~10%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2007년 7만~8만원에 불과했던 제조업체들의 보조금은 최근 20만~25만원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출고가 60만원짜리 휴대폰도 보조금을 제외하면 실제 납품가가 30만원 수준이고, 특히 일반폰은 납품가가 6만~7만원 수준도 안 되는 제품이 허다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국내 휴대폰 사업 부문이 간신히 적자를 면하거나 적자가 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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