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학이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교육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설립이념에 따라 종교교리 전파 등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된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공교육체제에 편입돼 있는 이상 종교의 자유 같은 학생들의 기본권 앞에선 한계를 가진다는 점을 대법원이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22일 서울 대광고 재학 중 학교측의 종교수업 강제에 반발해 단식농성을 하다 퇴학당했던 강의석(24ㆍ서울대 법대)씨가 학교법인 대광학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대광고는 종교행사 불참자에게 지각 처리 등의 방법으로 불이익을 줘 사실상 강씨에게 행사 참석을 강제했다"며 "이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강씨의 기본권을 고려한 처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학교는 종교과목을 정규적으로 수업하면서 교육부고시에 따른 대체과목을 개설하지 않았고, 수업 진행에 앞서 학생들의 동의도 얻지 않았다"며 "대광고의 종교교육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춰 볼 때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강씨의 퇴학처분에 대해서도 "당시 학교측에 대한 강씨의 행동은 결코 경미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종교교육을 위법하게 강행한 학교측에 있고, 강씨가 이를 시정할 마땅한 수단도 없었다"며 "강씨의 불손한 태도와 1인 시위 등이 퇴학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안대희ㆍ양창수ㆍ신영철 대법관은 "학생에게 전학의 기회를 주는 등 보완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종교교육을 강제할 때 종교교육이 위법한 것인데, 대광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퇴학처분에 대해서도 양승태ㆍ안대희ㆍ차한성ㆍ양창수ㆍ신영철 대법관은 "징계가 과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징계위원들이 법령 해석을 잘못 한 것이라 불법행위의 책임(손해배상)을 물을 과실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2년 학교 강제배정방식에 의해 대광고에 입학한 강씨는 매일 아침 찬송과 기도를 해야 했고, 매주 수요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1년에 한 번은 3박4일 동안 합숙 예배에 동원됐다. 강씨는 종교교육이 고통스러워 학교측에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지만 학교측은 언행이 불손하다며 나무랐다. 2004년 6월 고3이던 강씨는 교내 방송을 통해 "학교 예배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학교측은 이런 강씨에게 전학을 요구했고, 강씨가 이를 거절하자 퇴학 조치했다. 강씨는 법원에 '퇴학처분무효확인' 소송을 내고 49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끝에 소송에서 이겼다. 그는 이후 학교와 시교육청을 상대로 "헌법에 보장된 종교ㆍ양심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 당했고 부당 퇴학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5,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는 교육기관에서의 종교교육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며, 강씨를 퇴학 처분한 것은 학교의 징계권 남용에 해당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2004년 초까지 종교교육에 대해 명시적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점 등을 감안할 때 학교가 종교행사를 강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강씨는 대법원 선고 직후 "당연한 판결을 얻는 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학생들이 더 이상 강제적인 종교의식으로 고통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뜻에 따라 손해배상금 전액을 학교에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 종교 사학 "건학이념 훼손" 당혹
대법원의 '종교 자유 보장' 판결에 대해 종교 사학들은 "건학 이념 구현에 차질이 있을까 우려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에서는 판결을 환영하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시내 한 기독교계 학교 교장은 "미션스쿨은 성경을 가르치려고 세운 학교인데 종교교육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학생을 종교에 상관없이 강제 배정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교육을 원치 않는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광고가 속한 개신교 예장통합 측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추후 대응방침은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장통합 관계자는 "일단 대법원의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서 입장을 정한 뒤 추후 교단 차원에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종교단체가 선교 등을 목적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해도 공교육 시스템 속의 학교는 선교보다 교육을 1차적인 기능으로 삼아야 하고, 선교를 이유로 교육권 및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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