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 깨알 보석이 촘촘히 박힌 듯 눈부시게 새하얀 백사장. 작열하는 햇빛 그리고 시원하게 얼굴을 스쳐가는 맑은 바람. 4월의 사이판이 조용하면서도 기분 좋게 여행객을 맞았다.
산호초 군락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를 품은 사이판. 여느 휴양지와 달리 고층빌딩도 없고, 부적거리는 사람들도 없어 사이판은 고요한 바다만큼이나 정적이다. 지친 도시인들에겐 안성맞춤의 재충전 장소다. 강렬한 햇빛이 따갑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시원한 바람이 항시 불고 있어 야자수 아래에선 손수건도 필요 없이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 있다. 10분만 자고 나면 괴롭혔던 직장상사의 얼굴, 과중했던 업무, 신경 쓰였던 일들도 머릿속에서 모두 말끔히 사라진다.
사이판의 진주로 꼽히는 곳은 '마나가하섬'이다. 10분만 배를 타고 들어가면 노래방 화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그만 섬이 나온다. 1.5km 남짓한 섬 둘레를 20분 정도 거닐다 보면 순백 백사장에 내린 뒤 오롯이 새겼던 첫 번째 발자국을 볼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발을 뗄 때마다 변하는 바다색. 태양 각도와 산호에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코발트색부터 옥색까지 다양한 표정을 짓는 일곱 빛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저절로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참을 헤엄쳐 나가도 수심은 여전히 1m 남짓, 허우적거릴까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얼굴을 바다에 담그는 순간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와 그 친구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장관이 연출된다. 마음만 먹으면 이들을 손 쉽게 만질 수 있다. 산호 속에서 놀고 있던 수백의 열대어들이 금새 몸을 포위해버려 바다가 아닌 수족관 안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마나가하섬은 사이판 서쪽, 필리핀해에 위치해 있다. 난류성 해류 덕분에 바닷물이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하게 따뜻해 헤엄치기에도 딱 좋다. 물놀이에 지쳐 다시 해변가로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또 한번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어느새 사이판의 보물인 석양이 하늘에 펼쳐져 있다. 수평선 아래로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태양은 순식간에 하늘을 숨막히는 황금빛으로 만들어버린다. 적도에 가까운 까닭에 완만한 곡선 모양의 수평선을 가진 사이판 석양은 그야말로 바다가 태양을 삼키는 모습이다.
섬 밖으로 다시 나갈 때는 유람선 대신 패러세일링으로 하늘을 이용하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모터보트에 매달려 낙하산과 함께 솟아 오르면 등 뒤로 작은 섬이 보인다. 가까이 있을 때 몰랐던 마나가하섬의 전체 매력을 두 눈에 가득 채울 수 있다. 마나가하섬에서 점점 멀어질 수록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천국이 바로 이곳이었구나."
마나가하섬을 가지 않으면 "사이판을 가나마나"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실감하는 순간 물속에 빠질 수 있다. 모터보트를 운전하는 원주민이 갑자기 속도를 줄여 바다에 빠뜨리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사이판에는 귀여운 열대어만 사는 게 아니다. 상어도 많다.
■ 여행수첩
사이판은 많은 장점을 가진 여행지다. 멀지 않고 또 저렴하다. 한국말도 잘 통해 영어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한국 업체가 운영하는 리조트도 있다. 한화호텔&리조트㈜(대표이사 홍원기)가 지난해 인수한 월드리조트가 그곳이다.
지상 10층의 월드리조트는 전체 객실이 265실로 사이판에 위치한 많은 호텔 중 유일하게 전체 객실에서 사이판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리조트에서 3분만 걸어나가면 백사장이 있고, 야자수를 벗삼아 산책을 할 수 있다.
리조트를 재단장해 12월 그랜드 오픈을 앞둔 월드 리조트는 다양한 휴양시설이 마련돼 있다. 사이판 최고의 워터파크인 '웨이브 정글'은 월드리조트의 자랑거리다. 2m 높이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파도풀, 레이지풀 등 6개의 테마풀과 4개의 최신 슬라이드를 갖췄다.
55가지의 다양한 음식을 차려져 있는 뷔페월드와 한국음식점 명가 등 총 7개의 레스토랑도 있다. 특히 해변의 석양을 조명 삼아 원주민쇼를 보며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선셋가든도 월드리조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이 리조트에 숙박한 여행객에게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네일 아트 숍인 '토르', 정통 인도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라메르'와 강도 높은 스트레칭 마사지를 원하는 손님들을 위한 '타이마사지 숍'도 있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해 다양한 문화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구비된 '키즈 칼리지'도 운영 중이다.
사이판=글·사진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