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새2.5배 '눈덩이'… "경제 아킬레스건" 경고도
지난 14일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높이면서 두 가지 '우려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는 단골 레퍼토리인 북한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공기업 부채였다.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계산하는 함수에서 북한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 취급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디스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바로 공기업 부채 문제로 본 것이다.
공기업 부채 뜯어보니
과연 공기업 부채가 어느 정도이길래, 신용평가기관마저 그 위험성을 지적한 것일까.
우선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23개 공기업의 총부채는 213조2,042억원. 2008년에 비해 36조1,000억원, 20% 넘게 증가한 수치다. 2004년 83조8,000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5년만에 무려 2.54배로 늘어났다. 부채 비율 역시 전년 133.5%에서 153.6%로 급증했다.
그 심각성은 민간 기업과의 비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자산총액 5조원이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45개 민간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103.8%로 전년 대비 8.6% 포인트 감소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민간기업들이 '빚'의 심각성을 깨닫고 앞다퉈 부채비율을 낮춰온 데 비해, 공기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가 , 괜찮은가
일부에선 공기업부채와 국가부채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공기업 부채증가가 그대로 국가채무, 국민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이 벌이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국책사업이다. 정부의 '대행자'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우리 공기업은 정부가 할 일을 대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공기업 부채는 기본적으로 국가채무 성격을 갖는다"고 진단했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도 국가채무와의 연관성을 지적한다. 그는 "주택사업, 도심재개발 등의 공공사업에서 공기업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으나 갚을 만한 수익이 날 지는 의문"이라며 "수익률이 낮으면 정부가 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기업 부채가 누적되면 결국정부를 통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또 있다. 일반기업이라면 적자ㆍ부채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거나, 해당사업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공기업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수지가 악화하더라도 중단할 수 없으며, 가격도 정부의 물가통제를 받기 때문에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따라서 공기업은 스스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규모만 보고 공기업 부채문제를 평가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 총량으로 공기업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은 넌센스"라며 "공기업 별로 어떤 성격의 적자ㆍ부채가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입장도 비슷하다. "규모를 보지 말고 갚을 능력을 보라"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수 년간 대부분 공기업이 이익을 달성하고 있어 지급 가능성에 문제가 없다"며 "자산 역시 증가하고 있어 직접적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관리는 어떻게
공기업 부채는 현재 정부 부채(359조 6,000억원)의 60%에 육박하는 상황. 당장 국민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젠 보다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관련, 우선 제기되는 대안은 공기업 부채 중 국가채무 성격이 뚜렷한 부분을 떼어 내 별도 관리하는 방안. 최준욱 조세연구원 공공정책연구팀장은 "공기업 업무에는 시장 기능과 정부 역할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를 따로 구분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재정에 대한 국민감시기능 강화를 위해 국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와 관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근 자산규모 2조원이상 공기업(현재 14개)은 부채상황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형식적 국정감사를 넘어, 정부 예산ㆍ결산심사에 준하는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 LH 하루 이자만 70억
작년 11월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통합 후 처음 추진했던 채권발행이 무산됐다. 공기업, 그것도 대형 공기업이 채권 발행에 실패한 건 일종의 '사건'이었다. 당시 시장에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LH의 부채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작년 말 LH의 부채는 109조원. 통합 전인 2008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부채 총액(86조원)보다 20조원 넘게 불어났다. 부채비율이 공기업 최대인 524%에 달한다. 선수금 등 이자 부담이 없는 비금융 부채를 제외하더라도 75조원 규모. 하루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도 70억원이 넘는다.
물론 당장 인공호흡기를 꽂아야 될 정도로 다급한 처지는 아니다. 여전히 빚보다 자산(130조원)이 더 많다. 마음만 먹으면 자산을 팔아서라도 빚을 줄일 수 있다. 더구나 2013년을 정점으로 과거에 투자했던 사업이 수익으로 속속 회수되면서 빚 증가 속도도 둔화될 거라는 게 회사측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공공사업을 위임 받은 공기업이 자산 규모를 대폭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LH 재무개선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대부분 30년씩 장기임대로 묶여있는 임대주택의 경우 털어내기도 쉽지 않다"며 "공공사업을 위해서는 부지 선(先)매입 등 기본적으로 빚 증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면서 각 사업의 수익성이 예상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부담이다. 통합 1주년이 되는 10월 께 재무개선계획을 내놓겠다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채 관련 주목해야 될 또 하나의 공기업이 수자원공사다. 2008까지만 해도 부채 규모가 2조원에 못 미치고 부채비율도 19.6%에 불과한 매우 양호한 재무구조를 보여왔지만, 작년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빚은 1년 새 1조원 넘게 불어났고, 부채비율도 30%에 육박(29.1%)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가 해야 할 4대강사업을 대신 떠맡게 되면서, 2012년까지 8조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 처지다. 이에 따라 빚 규모가 8조3,553억원(올해) →13조2,247억원(11년) →15조124억원(14년) 등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부채비율 역시 올해 80%, 내년엔 126%로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수공측은"그래도 다른 공기업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이미 경고등은 켜진 상태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밑빠진 독' 4대연금 재정부담 언제까지…
국민연금과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등 ‘4대 연금’ 가입자가 지난해 말 2,000만명을 돌파했다. 취업자 10명 중 8.5명이 노후에 공적연금을 받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연금 재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4대 연금의 경우 시장 금리와 비교할 때, 낸 것보다 많이 받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수급자가 늘어나면 기금이 고갈되고 결국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무원, 군인연금에는 이미 적자 보전을 위해 정부재정이 투입되고 있는데, 해마다 투입액이 늘어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5년전 1,742억원이 들어갔으나, 2009년에는 그 11배인 1조9,028억원이 투입됐다. 군인연금에도 2004년에는 6,147억원이 투입됐으나, 지난해에는 9,400억원으로 늘었다. 사학연금과 국민연금은 아직은 사정이 낫지만, 각각 20년과 50년 후에는 기금 고갈이 우려된다.
문제는 ‘저부담-고급여’라는 연금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적자 폭이 향후 계속 확대된다는 점. 국민연금의 경우 수급자가 지난해 281만명에서 2020년에는 469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현행 체계가 유지된다면 2047년쯤에는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보다 은퇴자들에게 지급하는 규모가 많아지고 2060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사학연금도 2021년에는 지출규모가 5조원을 넘고, 2029년에는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 만큼 연금 적자급증은 고스란히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2050년 171조2,920억원으로 예상되는 4대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10세 미만인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4대 연금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경제정보센터장은 “급여를 낮추는 등 일부 개선은 있었지만, 국민연금은 부담액을 추가로 올리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낸 것보다 적게 받는 상황을 맞게 된다”며 “이 경우 연금 체계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연금 개혁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부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이 소신을 갖고 연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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