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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2> 이탈리안 요리의 두 셰프…스승 김형규, 제자 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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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2> 이탈리안 요리의 두 셰프…스승 김형규, 제자 최현석

입력
2010.04.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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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요? 다룬지 20년 되니 이해 되더군요

"우리가 만난 지 한 15년 되었나?" "벌써요?" "스물 셋 때 봤으니까 15년이 넘었네."

두 명의 셰프가 나란히 앉아 말문을 연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다. 스물 셋의 요리 초보로 주방에 발을 들인 최현석(39ㆍ엘본 더 테이블)셰프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스승 김형규(50ㆍ비스테카)셰프를 16년 전에 만났다.

그림에 소질 있고, 발차기를 좋아하던 젊은 청년은 아버지도 요리사, 형님도 요리사였던 영향으로 막연한 꿈을 안고 주방에 입문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이 두 사람이 만났던 주방은 미식가들의 아지트였던 모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요리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대한민국의 서양 요리 발전에 큰 몫을 했던 곳이다.

"최 셰프는 그때도 키가 제일 컸어요. 조리대가 낮아서 두 다리를 기린처럼 양쪽으로 벌리고 서서 칼질을 했지요."

까마득한 막내 요리사가 번듯한 '셰프'가 되어 돌아온 것이 대견한 듯 말하는 스승. 매 번 이름 대신, '최 셰프'라고 불러 주시는 배려가 멋지다.

'셰프 중의 셰프'로 꼽히는 스승

김형규 셰프야말로 '셰프들의 셰프'로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조리 학과를 나와 특급호텔에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양식, 그것도 당시로서는 생소하기만 했을 이탈리안 요리가 전문이 될 줄 알았을까. 김 셰프는 미술적 감각을 갖춘 요리사다.

그의 음식 프레젠테이션이나,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 인테리어만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에 심미안과 열정이 한 겹씩 더해질 때 조리사가 요리사로, 요리사가 예술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두 셰프는 입을 모은다.

호텔 입사 때만해도 김 셰프는 요리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는 '사원'에 불과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얼음 조각'기술이 발휘되면서 호텔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조리장 눈에도 들게 된 것이었다. 연회나 파티 주문을 자주 받는 서양식에서 '얼음 조각'을 할 수 있는 요리사는 당연히 환영 받는다.

"제 주방에 최 셰프가 왔을 때에도 종종 아이스 카빙(얼음 조각)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나는 늘 혼자 얼음 깎느라 애를 썼는데, 그때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도움을 자청한 것이 유일하게 최 셰프였지요. 최 셰프도 그렇게 배워서 아이스 카빙을 합니다."

김형규 셰프는 최 셰프 얘기를 하며 '나도 해 보고 싶다'는 마음과 열정이 요리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재료라고 강조한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맛'을 논할 때에 빠질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셰프(chef)'다. '셰프 드 퀴진(chef de cuisine)'이라는 프랑스어 표현에서 따 온 '셰프'는 요리사 중에서도 그 주방의 총괄을 맡는 대장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다. 프랑스 왕정 시대에는 궁 안에서 왕의 왕관 높이와 견줄만한 모자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셰프'였다 할 정도로 '셰프'라는 호칭이 갖는 자부심은 큰 것이다.

1961년 청주에서 태어난 김형규 셰프는 워낙 어머님의 손맛도 좋았고, 고향 선배들 가운데 요리사들도 몇이나 된다고 자랑을 한다. 요리사들은 손 맛 좋은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경우가 많다. 최현석 셰프의 모친도 한식 요리사다. 입맛이나 취향이 꽤나 '토종'인 최 셰프가 스승의 주방에 입문하던 날, 처음으로 지시 받은 과제가 무엇이었을 지 궁금해 물어봤다.

치즈와 블랙 올리브를 강제로 먹은 제자

"치즈랑 블랙 올리브를 반 강제로 먹이셨어요. 이런 맛들이랑 친해져야 양식 하는 거라고."

당시만 해도 이탈리안 요리는 스파게티로만 알려져 있는 낯선 분야였기에 신참이라면 당연히 입맛이 문제였던 것이다. 치즈와 올리브를 혀에 익히며 받은 또 한 가지 명령은 젓가락질.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에서도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주인공 셰프가 긴 젓가락을 지휘봉처럼 쓰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서양 셰프들은 집게를 쓰는데, 한국 셰프들은 젓가락을 쓸 수 있어서 득이 많아요." 스승이 말하고, "요리나 식재료를 젓가락으로 집으면 좀 더 섬세하게 다룰 수 있지요." 제자가 받는다. 치즈와 올리브는 입에 완전히 절도록 맛을 봤고, 긴 젓가락으로 맛의 시를 쓰는 경지가 된 김 셰프에게 묻고 싶은 질문. 대한민국에서 양식 셰프로 산다는 것은?

"최근 들어 '셰프'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지만 일하는 여건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어, 내가 예상했던 답이 아니다. 나는 그래도 과거 보다 지금이 한결 나아졌다는 답을 듣고 싶었는데. 두 셰프 모두 자녀들에게 요리를 직업으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업계와 후배들의 인정, 요리사라면 누구나 희망하는'오너 셰프'라는 꿈을 이룬 김 셰프의 말이 정답이다. "남들이 밥 먹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일하는 시간이죠. 자녀들만큼은 남들 먹을 때 먹고, 쉴 때 쉬었으면 좋겠어요."

게다가 한국에서는 양식당이 3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도 한 몫을 한다. 3년을 버티려면 주인장이 그만큼 요리와 맛에 미쳐야 하고, 실력 있는 요리사가 필수고, 유행이나 '새로 오픈 한 레스토랑'만을 좇지 않는 의리 있는 식객들이 받쳐 줘야 하는데 그 삼박자가 딱 갖춰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식재료에 통달한 요리사 나와야"

고기를 다룬 지 20년이 되었을 때 고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김형규 셰프는 그만큼 자기가 다루는 요리와 식재료에 전문인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아직 채 기본기를 익히지 못한 요리사를 '모셔다' 레스토랑을 차려봤자 먹는 사람들이 금방 알아챈다는 말이다. "고기만 해도 품종, 나라, 계절, 부위, 숙성 과정, 불에 따라 그 맛이 다 다르니 요리에는 정말 정답이 없는 거죠. 토마토소스 하나 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하겠다는 자세가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때로는 엄마처럼 자상하고 때로는 장군처럼 엄한 스승의 제자들이 독립 한 후에도 막상 힘들 때마다 찾는 곳은 바로 김 셰프의 주방이다. "밥은 먹었냐?"며 볶아주시는 국수(파스타)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맛이라고 최 셰프는 몇 차례나 고마워한다.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행운 같은 요리 스승들과 그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대한민국 젊은 셰프들이 이제는 대물림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열정의 대물림이 우리 맛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에 박수가 절로 난다.

■ 레몬 드레싱으로 맛을 토마토 아보카도 게살 샐러드

-레몬 드레싱은 신선한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4:1 비율로 소금과 후추를 갈아 넣고 거품기로 혼합해 만든다.

-신선한 게를 잘 손질한 다음 찜기에 넣고 쪄서 살을 발라낸 다음 식힌 후 레몬 드레싱을 끼얹어 맛을 들인다.

-토마토와 양상치, 잘 익은 아보카도와 준비된 게살을 예쁘게 담아 낸다. 신선한 게살 샐러드는 게살 자체의 순수한 맛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맛이 첨가되면 오히려 의도와는 다른 요리가 될 것이다. 가능한 한 게살의 신선한 맛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마토는 요즘 시즌인 대저 토마토를 쓴다면 아주 좋다. 신선한 토마토 아보카도, 상치와 게살 그리고 올리브유 그리고 레몬 한 번 꾹 짜 넣으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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