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영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영웅

입력
2010.04.22 11:57
0 0

단재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 사설 <영웅과 세계> (1908년 1월5ㆍ7일자)에 이렇게 썼다. '영웅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사람은 그 지식이 일만 사람보다 뛰어나고, 그 기개가 온 세상을 덮어서, 무슨 힘으로든 일국이 바람같이 엎드리고, 천하가 산같이 쳐다보아 태양이 만물을 끌어들이듯 동서남북의 수많은 사람이 모두 그 한 몸을 향해 노래하고 찬송하고 사랑하고 사모하고 높이고 공경한다.'또 과거에는 좁은 눈으로 무인만 영웅이라 했지만 뭐든 자신의 장기로 사람들이 감복해 따르게 한다면 영웅이라고 밝혔다.

■ 단재는 대개가 영웅의 자질을 갖고도 떨쳐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네 가지 예로 들었다. '옛 규모를 지키고자 완고함을 달게 여기거나, 어려운 것이 두려워 진보를 한정하거나, 옛사람을 높이 보아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낭패할 것이 걱정돼 바랄 것이 없는 줄로 아는'것 등이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갖고,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가지라는 충고다. 폴 존슨의 <영웅들의 세계사> 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신념을 밀고 나가는 용기'를 영웅의 으뜸 특성으로 꼽은 것과 같다.

■ 예스럽고 거창한 어감 때문에 영화나 만화에 더러 나오고, '스타'라는 외래어에 떠밀려 더욱 쓰임새가 줄어든 '영웅'이란 말을 천안함 참사 이후 자주 듣는다. 희생자들의 넋 앞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어쩐지 귀에 설다. 북한의 관여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은 속마음에서 '영웅' 호칭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해온 일부 시민단체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느끼는 의문이다. 단재나 존슨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영웅'에게는 남다른 용기와 희생정신이 요구된다. 가령 목숨을 무릅쓰고 생존자 구조에 나섰던 고 한주호 준위는 분명 영웅이다.

■ '영웅'이란 한자어의 핵심 의미소가 '꽃부리 영(英)'이고, 무사나 군인의 죽음이 꽃 지는 모습에 자주 비유되기도 한다. 젊은 장병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영웅'과 어울린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꽃부리'는 꽃잎이 합쳐 있을 때의 꽃잎 부분 전체를 가리킨다. 흩어져 떨어지는 꽃잎은 꽃부리일 수 없다. 더욱이 이 '영'자는 명사가 아니라 '뛰어나다'는 뜻의 형용사다. 생존자들이 보여준 전우애로 보아 희생자들 가운데 틀림없이 용기와 신념을 발휘한 영웅이 있었겠지만 확인할 수도 특정할 수도 없다. 말의 인플레가 심해 나직한 말은 듣지 않는 세태라지만 정부나 공영방송마저 생각 없이 편승할 일은 아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y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